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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시청역 참변 ‘토마토 주스’ 조롱…사회적 참사 고인 모독 왜 계속되나[마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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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폭발, 이태원 참사 때도

모욕·혐오·희화화 표현 게시돼

패륜적 발언 제재 없이 범람

경계 수위 불분명해져

관심·주목 원하는 심리도 반영

편집자주‘마감후’는 지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뒷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밀도 있게 전달합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결과인 속보, 스트레이트, 단신 기사에서 벗어나, 그간의 스토리, 쟁점과 토론 지점, 찬반양론 등을 다양한 시각물과 함께 보여드립니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9명이 사망한 참변이 일어난 가운데, 고인 추모 공간에 ‘토마토 주스가 된 분들’이라고 적힌 쪽지가 남겨져 파문이 일고 있다. 피해자들을 패륜적으로 모독하는 조롱 글로, 경찰은 형법상 모욕죄·사자 명예훼손 등을 언급하며 작성자 추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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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시청역 참사 현장의 충격적인 조롱 글’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조화와 추모 글이 찍힌 가운데 그 중 한 종이에 “토마토주스가 돼버린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사진은 포털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산돼 충격을 주고 있다.(자료=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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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지난 4일 ‘시청역 참사 현장의 충격적인 조롱 글’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조화와 추모 글이 찍힌 가운데 그중 한 종이에 “토마토주스가 돼버린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사진은 포털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산해 충격을 주고 있다.

2차 가해도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다음날인 지난 2일부터 네티즌 중 일부가 희생자들을 향해 “굿 다이(Good die)”, “볼링절” 등의 글을 남겼다. 후자의 경우, 인도를 침범한 차량에 희생자들이 추돌당한 것을 볼링에 비유한 것이다. 해당 글들은 경찰 수사 공표를 의식한 듯 현재는 전부 삭제됐다.
화성폭발·이태원 참사·세월호 때도 모욕, 혐오 글 잇따라 게시

문제는 대형 참사나 사회적 재난 때마다 사망자나 유족을 모욕하는 형태의 이런 혐오 표현이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리튬 전지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23명 사망) 직후 온라인 공간에 ‘좀 ○져도 되지 않냐’, ‘○○○ 같은 족속’ 이라는 글이 게시됐다. 159명이 사망해 사회적 재난이 된 이태원 참사 사고일(2022년 10월 29일)을 일컬어 ‘압력절·호떡절’이라고 희화화하는 글도 논란이 됐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어묵’에 빗대는 사진도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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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혐오와 차별, 패륜적 표현이 제재 없이 범람하다 보니 생기는 ‘탈억제 효과’라고 분석했다.

탈억제 효과란 공격행동을 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모델을 관찰해, 공격행동에 대한 억제를 낮추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온라인에서 수위가 높은 발언들이 규제 없이 남발되다 보니, 그 연장선상에서 ‘경계를 해야 하는 수준’의 말도 무분별하게 통용이 되는 것”이라면서 “혐오 표현의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다 보니 절대 해서는 안 될 고인에 대한 모욕까지 진행이 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서 패륜적 발언 제재 없이 범람...경계 수위 불분명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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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어묵’에 빗대는 사진도 충격을 줬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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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적 발언으로 관심을 끌어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가 극대화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사이버 렉카’(남의 불행이나 사고, 실수, 결점, 잘못 등을 인터넷 상에 주로 영상의 형태로 공론화해서 이득을 챙기는 사람)와 유사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이버 렉카의 최우선 행동 동기는 시선을 끄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과 윤리 기준에 무감각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애도하는 슬픈 사건에 대해서 ‘나는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심리, 그런 방식으로 우월감이나 특별함을 찾고자 하는 발화자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면서 “일종의 사회적 일탈 행동”이라고 봤다.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지만 , 공론화 통해 규제 기준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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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혐오 표현 규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도 혐오 표현을 규제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고 ‘표현의 자유’ 논란 끝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실제 ‘혐오 표현 규제’와 관련된 헌법 조항들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헌법21조 1항과 22조 1항은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둔 반면, 헌법21조 4항, 37조 2항은 각각 ‘사회 윤리를 침해해선 안된다. 법률로 제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로선 해이트 스피치에 대해 과태료라도 물릴 수 있는 기준이 없고 모호하다. 혐오표현이 한번 등장하게 되면 서로 촉진이 되는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시청역 차량충돌 사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글을 반복적으로 유포 혹은 게시하는 행위에 대해 내사와 수사에 착수했다. 논란이 되는 온라인 게시판 등에 대해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접속 차단 조치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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