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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아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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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 글로벌 대기업과 맞선 인권 변호사 출신 키어 스타머(61) 노동당 대표가 영국 총리로 취임한다. ‘제 3의 길’을 주창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이후 14년만의 첫 노동당 출신 영국 총리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현지시간으로 오전 5시 기준 노동당이 하원 650석 중 326석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스타머 대표가 이변 없이 영국 총리로 취임하게 됐다. 스타머 대표는 보수당 리시 수낵 총리가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사의를 표명한 직후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로부터 정부 구성 요청을 받는 절차를 통해 총리로 공식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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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과반 득표해 새로운 영국 총리로 취임하게 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가 선거 승리 소식이 전해진 뒤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미소와 박수로 응대하고 있다. 그는 14년만의 노동당 출신 영국 총리다. 런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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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머 대표는 추진력과 실용주의로 노동당의 1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일궜다. 그는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나 글로벌 대기업과 맞선 인권 변호사 출신이지만, 정계에 진출해 당권을 잡은 이후로는 중도좌파 노동당을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의 스타성으로 인기를 끌려 하기보다 정권 교체를 목표로 당을 결집하고 비판에 굴하지 않고 당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스타머 대표는 326석 과반 확보 직후 “우리는 해냈다”며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환호했다. 그는 “변화된 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국을 복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스타머 대표에 대해 “보수당 총리 3명의 실패 경험을 기회로 삼아 무자비한 효율성으로 노동당을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스타머 대표는 총선 기간 내내 “아버지는 공장 기술자, 어머니는 간호사”라며 노동계급 출신임을 연이어 강조한 바 있다. 노동당 지지자인 그의 부모는 키어라는 이름을 노동당을 창당한 키어 하디 초대 당수의 이름을 따 지었다. 상대적으로 서민 계층이 모여 사는 런던 템즈강 남부 서덕에서 태어나 세 형제자매와 함께 자라는 동안 어머니는 만성 희소병을 앓았고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리즈대와 옥스퍼드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했는데 가족 중에 대학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스타머 대표는 1990년대엔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맥도날드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환경운동가들을 변호했고, 아프리카·카리브해 지역 사형수들의 항소를 이끌었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한 인터뷰에서 2005년 우간다에서 400명의 사형 선고를 뒤집은 사건을 변호사로서 가장 최대 성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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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총선이 치러진 영국의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의 투표용지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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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집권 시기인 2008년부터는 잉글랜드·웨일스 검찰 수장인 왕립검찰청(CPS) 청장으로 5년간 일하며 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아 스타머 경으로 불린다. 그가 정계에 진출한데 대해 일각에서는 그가 기득권층에 들어섰다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50대 늦은 나이로 201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5년만에 2020년 4월 당대표로까지 선출됐다.

그가 당대표에 선출된 때는 코로나19 팬데믹, 물가 급등, 공공서비스 악화 등으로 유권자들의 보수당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시기다. 스타머 대표는 당내 분열을 다잡고 전임 제레미 코빈 대표의 좌파 색채를 희석해가면서 당의 확장성을 높였다.

영국 정부는 팬데믹, 브렉시트 등을 거치며 극심한 재정 압박과 무너진 공공서비스,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스타머 대표 개인의 정치적 성공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반적인 우경화 속 14년만에 집권한 영국 노동당의 운명도 그가 이를 어떻게 뛰어넘는가에 달렸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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