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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의사가 왜 환자를 사지로 몰아넣나” 거리로 뛰쳐나온 환자들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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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연합 등 102개 환자단체 참여
휴진 철회, 의사 집단행동 제재 법 요구
한국일보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하은씨와 어머니 김정애씨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이 주최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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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지금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환자 곁을 떠난 의료진은 하루속히 돌아오라.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전공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를 5개월째 겪고 있는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들에 대한 분노, 하루하루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달라는 호소, 목숨을 볼모로 삼는 의사 집단행동을 규제하라는 요구를 의료계, 정부, 시민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무기한 ‘진료 재조정’ 돌입을 선언한 4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소속 102개 단체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가두집회를 열고 집단휴진 철회와 의료 정상화를 외쳤다. 환자와 보호자가 의정 갈등 국면에서 집회를 연 건 처음이다. 의사에게 생명을 맡긴 환자로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참여 인원은 주최 측 신고 1,000명, 경찰 추산 400명이다.

췌장암 4기 환자인 김선경씨도 뙤약볕 아래 섰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졌고 쇠약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2월 12일 고열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간농양과 췌장암 판정을 받았는데 입원 도중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고 한다. 김씨는 “의사 집단행동과 내 췌장암 투병이 동시에 시작됐다”며 “폐, 간, 갑상선, 복막까지 전이돼 두려운 상황에서 진료 예약을 잡기 힘들어 더욱 절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공교롭게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날은 이 병원 교수들이 진료 축소에 나선 첫날이지만 참여율이 높지 않아 현장 혼란은 없었다. 하지만 환자들은 끝없는 의정 갈등에 불안해하고 있다. 김씨는 “집단휴진 소식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것이 죽음의 길인가 생각했다”며 “살기 위해 내 발로 거리에 나왔다”고 강조했다.

심장병을 앓았던 열두 살 유진이 엄마 지은현씨도 큰 목소리로 “환자 없이 의사 없다” “반복되는 의료공백 재발방지 입법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생후 6개월 때부터 투병한 유진이는 현재 추적 관찰 중이지만 전공의 이탈로 예정된 검사가 수개월 밀려 가족들은 걱정이 많다. 지씨는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기만을 빌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의료가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 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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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는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든 정부, 전공의, 의대 교수는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며 강하게 성토했다. 그러면서 △세브란스병원, 고려대병원, 서울아산병원 휴진 철회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중심 전환 및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의료인 집단행동 시 필수의료 유지 의무화 법 제정을 요구했다.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장은 “국민과 환자는 의대 증원을 환영하는데 의사들은 교육 여건 부족을 이유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의료진 파업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집단행동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의사에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건 주권자인 국민”이라며 “환자는 의정 갈등에 희생돼도 좋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의사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외쳤다.

선천성 희소질환인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을 앓는 딸을 돌보는 김정애씨는 딸과 함께 자택인 충남 홍성에서 올라왔다. 의사 집단행동에 삭발투쟁까지 했던 김씨는 “우리에겐 50년 같은 5개월이었다”며 “딸이 치료도 못 받고 이별하게 될까 봐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섭다”며 울먹였다. 이어 “환자를 사지로 몰아넣는 의사 파업이 더는 없도록 국회는 법으로 원칙을 세우라”며 “전공의는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의정은 역지사지 마음으로 진정한 대화를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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