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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환자들 거리 나왔다…"뇌종양·희귀병에도 진료·수술 거부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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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와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환자 단체 회원들


"어떤 일이 있어도 아픈 사람에 대한 의료 공급이 중단돼서는 안 되며 의료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줘서 불안을 조성해서도 안됩니다. 필요할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전공의들의 이탈에서 시작된 의료공백 사태가 넉 달 넘게 이어지면서도 끝이 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거리에 뛰쳐나왔습니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는 오늘(4일) 오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열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의료계와 정부를 향해 외쳤습니다.

오늘 집회에는 경찰·주최 측 추산 400명가량의 암환자와 보호자, 일반 시민 등이 참석했습니다.

회원들이 질병을 짊어지고 있는 환자나 그 보호자인 만큼 환자단체가 이렇게 대규모로 집회를 여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특히나 이렇게 대규모의 환자 집회는 전례를 찾기 힘듭니다.

환자단체들은 그동안은 주로 정부나 정치권 인사들과의 간담회나 기자회견을 통해 의견을 밝혔었습니다.

그런데도 직접 거리에 나선 것은 지난 5월 말 법원의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리고 정부가 내년도 정원을 확정했는데도,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회에 참석한 뇌종양 환자 이 모(68) 씨는 "뇌종양으로 시신경이 압박을 받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실명될까 불안한 상황에서 수술이 기약 없이 미뤄져 절박한 심정에 참석했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더위와 통증으로 인한 불편함으로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가며 연신 표정을 찡그렸습니다.

4월로 돼 있던 이 씨의 수술은 10월로 미뤄졌습니다.

그는 "10월에라도 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아 무섭다"며 "고통과 실명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가족과 애태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씨는 "의사들도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이 있을 것이고 이해한다"면서도 "뇌종양에 실명 위기인데도 중증이 아니라고 하니 참담하다. 무기한, 전면 휴진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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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들은 집회 개최를 알리며 '의사 집단행동에 뿔난 국민 누구나 환영'이라는 문구를 내걸었고 실제로 오늘 집회에는 환자와 보호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다수 참석했습니다.

기사로 집회 소식을 접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는 홍 모(74) 씨는 "나는 환자가 아니고 주변에 환자도 없지만 환자들에게 힘을 보태 주려고 일부러 왔다"고 말하며 손팻말을 들고 환자들 옆에 앉았습니다.

그는 "자기 부모가 암환자고 내가 진찰하는 의사라고 하면 휴진했겠나"라고 질타했습니다.

지인의 상황이 마음 아파 그를 참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모(61) 씨는 "아는 사람의 유방암이 완치되지 않아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데, 호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나가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옆에서 그 가족의 안타까움을 지켜봤는데, 오늘 집회에 간다고 해서 따라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환자 치료보다 의사 권익을 우선하는 데 반감이 생겼다"고 참석 이유를 밝혔습니다.

집회 장소를 지나던 김 모(35) 씨도 "정부의 무리한 의대 증원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휴진은 너무했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정부가 그동안 의료 문제를 등한시하다가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의사보단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4년 전에 이어 또다시 의사들이 집단 휴진에 나서는 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솔직히 의료진 본인이나 가족들은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렇지 못한 일반 환자들에게는 정말 가혹한 상황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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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들은 정부에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고 전공의 수련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국회를 향해서는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한시도 중단없이 제공되도록 관련 법률을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단체들은 "의사들은 환자들을 향해 '정부 탓을 해야지 왜 의사 탓을 하냐'며 날을 세웠고, 정부는 의대증원 찬성 여론을 앞세워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공의들을 밀어붙였다"며 양측 모두를 비판했습니다.

또 "반복되는 의정 갈등에서 매번 백기를 든 정부를 경험한 의사 사회가 여전히 진료권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힘을 과시하고 있다"며 "아픈 사람에게 피해와 불안을 강요하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행태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제자를 지켜야 한다'며 환자에게 등을 돌릴 때 깊이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며 "'환자보다 제자 먼저'라는 내 식구 챙기기 마음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참석자들은 '환자없이 의사없다, 집단휴진 중단하라, '반복되는 의료공백, 재발방지 입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장은 "의료진 파업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고, 집단행동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단체행동을 할 수 없도록 의료법 제정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피해는 전문의 자격과 의사 면허를 따는 기간이 조금 더 길어지는 피해이지만, 환자 피해는 어떤가"라고 물으며 "질병이 악화하고,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불안으로 투병의지를 잃어 치료를 포기하고,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피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에게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특권을 준 것은 의사의 부모도, 의사협회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라며 "의사집단은 신속히 의료를 정상화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집회에는 선천성 희소질환인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보호자 김 모(68) 씨도 참석했습니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진료 거부를 경험하고 삭발 투쟁에 나서기도 했던 그는 "딸이 치료도 못 받고 저와 이별하게 될까 봐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섭다"며 "무지한 엄마지만, 분명한 것은 갈등에 우리 환자들의 생명이 볼모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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