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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저출생 축소사회...대한민국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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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수백조 쓰고도 출산율 ‘뚝’
축소사회 인정하고 맞춤형 전략 세워야


“위대한 성장의 시대는 갔다. 인구, 도시부터 경제까지 세계 모든 것이 축소되고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출신 도시계획 전문가 앨런 말라흐는 저서 ‘축소되는 세계’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심지어 “축소라는 필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무용지물”이며 “쪼그라드는 파이의 부스러기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 경쟁도 무의미하다”고까지 했다.

지난 1분기 합계출산율 0.76명. 한국의 출산율 하락 속도는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어쩌면 한국은 앨런 말라흐가 예견한 ‘축소사회’의 첫 번째 사례가 될지 모른다.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한국 전반을 휘감지만, 그렇다고 ‘성장 멈춤’이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앨런 말라흐는 “오히려 축소사회를 인정하고 적응하는 방안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매경이코노미는 일본과 유럽 사례를 통해 현실적인 축소사회 적응 전략을 찾기로 했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한정된 자원으로 효율성을 높인 집약형 도시 구조에 집중한다. 또한 ‘10년 더 일하는’ 노동 환경을 조성해 고령화에 맞서는 중이다. 독일은 제조업 자동화와 고급 인력 이민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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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생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만 380조원이다(국회예산정책처 자료).

효과는 없었다. 2006년 당시 1.1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까지 추락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줄었다. 198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4월 살짝 반등했다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한 건 이웃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2006년 이미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인 초고령사회를 마주했다. 최근에도 그 추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2명이다. 우리보다 낫지만 역대 최저치다. 특히 도쿄도는 0.99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한 명 아래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도 30년 동안 저출생 대책으로 66조엔, 우리 돈으로 580조원을 썼다.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규모 지원에도 출산율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자조적으로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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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16년 뒤 한국 경제가 0%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장기경제성장률(잠재성장률)이 2%대 초반에서 점차 하락해 2040년에는 0%대로 진입한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023~2030년 1.5%, 2031~2040년 0.9%, 2041~2050년 0.2%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30~2060년 한국 잠재성장률 평균치를 0.8%로 추정했다. 2000~2007년 3.8%에서 2007~2020년 2.8%, 2020~2030년 1.9%로 하락한 뒤 2030~2060년에는 연평균 0%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가진 노동·자본 등의 생산요소를 동원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수준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이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2~2072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중위 추계 기준 3674만명이던 생산연령인구는 2030년 3417만명으로 줄고 2072년 1658만명으로 쪼그라든다. 반면 고령인구(65세 이상)는 오는 2025년 처음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고 이후 2050년에는 40%로 크게 늘어난다. 길에서 만나는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라는 의미다. 일할 수 있는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줄고, 고령인구가 늘면서 노동 공급이 줄어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처럼 인구 감소는 공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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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당시 1.1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까지 추락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줄었다. 198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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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

출산율 제고+‘작은사회’ 준비 필요

암울한 전망에 윤석열정부도 고민이 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오늘부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또 “저출생대응기획부의 명칭을 ‘인구전략기획부’로 정하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맡아 저출생·고령사회·이민 정책을 포함한 인구에 관한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토록 하겠다”고 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제가 몸담고 있는 저고위와 관계 부처들은 향후 10년이 저출생 대응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비상한 각오를 갖고 저출생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축소사회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도시계획전문가 앨런 말라흐는 ‘출산율 증가’라는 접근이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일단 하락 국면에 들어선 출산율을 반전시키기 어렵고,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구 감소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앨런 말라흐는 “많은 나라의 인구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세상에서, 축소 도시는 더 이상 이례적인 존재나 아웃라이어(outlier)가 아니다”라며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축소 도시가 표준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앨런 말라흐는 인구 감소를 뉴노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신 건강하게 지역 경제와 사회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도 탄탄한 경제력을 유지하는 일본에서도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구 감소를 받아들이고 ‘콤팩트시티(Compact City)’로 대응하는 식이다. 고령층 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역시 일본이 선두 주자다. 일본은 전체 노동인구의 15%가 65세 이상이다.

또한 인구가 줄어든다고 경제가 무조건 어려워지는 건 아니다. 경제 성장을 일으키는 요인이 인구 증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앨런 말라흐는 인력의 기술과 교육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인적 자본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다.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는 “우리나라는 기후·안전 위기, 인구 감소, 기술 발전으로 인한 공급 과잉으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등 수축사회로 진입했다”고 진단하며 “그나마 지금이 경제, 사회 안전망, 연금, 국가 재정, 교육, 복지, 외교 등 모든 분야를 재편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그는 수축사회 갈등 해결 방안으로 ▲사회적 자본 확충 ▲욕망에 대한 다양성 인정 ▲고령화사회의 불확실성 제거 ▲획기적인 성장 정책 등을 꼽았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6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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