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6 (토)

반시장 법안만 늘리는 국회…개원 한달 21대보다 두배 많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차량 공유 중개 플랫폼 타운카는 경기도 거주 회원들 차량을 반경 6㎞ 이내에 사는 이웃들에게 대여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현행법은 개인 차량을 유상대여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가 혁신산업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유예해 주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실증 조건들로 인해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증조건 완화나 관련 법령 정비가 돼야 온전한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타운카 관계자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사업은 제약 조건이 많다"며 "기술 개발과 인력 채용에 큰 비용이 들어가 사업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규제 혁신 기조에도 불구하고 규제샌드박스를 비롯한 주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제22대 국회가 출범 한 달 만에 300건에 달하는 규제 법안을 쏟아내면서 신산업은 물론 국내 산업 경쟁력을 가로막는 '규제 공화국'의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5년간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건수는 517건이지만 법령 정비까지 완료된 경우는 90건에 불과해 80% 이상이 발목을 잡혔다. 2017년 도입된 규제샌드박스는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를 일정 조건하에서 시장에 우선 출시해 검증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이를 통해 실증특례나 임시허가를 받은 기업들은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이후 법령이 정비되면 규제샌드박스 신청 기업뿐 아니라 신청하지 않은 동일·유사 업종 기업도 해당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가 제 기능을 상실하며 법령 정비가 늦어지면서 사업을 접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자금 조달이 특히 어렵다"며 "사업 개시 허가를 받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고 법령 정비가 밀려 결국 사업 자체를 접었다"고 토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창업 7년 미만 스타트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64.3%가 규제로 인해 애로 사항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 기업의 37.7%는 한국의 스타트업 규제 수준이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경쟁국보다 높다고 답했다. 최근 가장 큰 경영상 애로 사항에 대해서는 44.7%가 '신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률·제도'를 꼽았다.

국회는 규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 좋은규제시민포럼에 따르면 22대 국회는 개원 후 한 달간 규제 법안 283건을 발의했다. 지난 21대 국회 출범 한 달 동안 발의된 규제 법안 153건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여소야대' 지형이 이어지면서 야당발 반기업 규제 법안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만큼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근거 조항을 마련하는 '좋은 규제'의 통과 가능성도 정쟁으로 인해 낮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이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을 활용해 직원을 채용할 경우 구직자에게 AI 평가 방식이나 알고리즘 작동 방법을 미리 알리도록 하는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인근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규정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들 법안은 도입 취지는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규제 절차가 추가되고 진입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영업 비밀을 유출하고 주민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는 나쁜 규제"라고 지적했다.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규제 법안도 수두룩하다. 이연희 민주당 의원은 안전운임제를 상시 도입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가맹점주단체에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도 22대 국회 개원 한 달 만에 6건이 재발의됐다. 김주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오히려 독소조항이 강화됐다는 평가다. 노조법 개정안은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며,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해고자와 실업자 등의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근거로 쓰이는 기존의 노조법 항목을 삭제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산업 현장에 상시 파업을 조장할 악법"이라며 "노동계의 하투 강행으로 제조업 분야 성장동력도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개별 가맹점주가 개인 사업자인 만큼 일반 기업 근로자에게 부여하는 단체교섭권을 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규제입법영향평가를 비롯한 제도적 보완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입법영향평가는 입법안이 국민 경제에 미칠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고, 예상 가능한 부작용을 법률 심사 단계에서 미리 검증하는 제도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들은 20여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17년 한국 국회에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다만 국회에 관련 법률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다. 배관표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교수는 "22대 국회는 규제를 만드는 것만 입법 활동이 아니라 낡고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는 것 또한 입법 활동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규제 감축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한 기자 / 이호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