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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카드 한 장에 수천만원…또 하나의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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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카드 컬렉션 시장


# 2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매 시즌 야구장을 찾고, 좋아하는 야구팀의 유니폼을 몇 장씩 사는 소문난 ‘야구광’이다. 그는 최근 야구팬 사이에서 화제인 ‘KBO 프로야구 컬렉션 카드(KBO 카드)’를 어렵사리 구했다. 해당 카드는 세븐일레븐이 대원미디어와 손잡고 출시한 카드다. 총 140명 선수의 사진이 담긴 KBO 10개 구단 카드와 10명의 레전드 선수 카드, 홀로그램 카드, 선수 친필 사인이 포함된 카드로 랜덤 구성됐다. 이 씨는 “휴대폰 편의점 애플리케이션에서 멀리 있는 매장의 재고를 확인해 한 박스(30팩, 90장)를 겨우 구매했다. 카드는 일반, 민트, 핑크 등 홀로그램 등급별로 희소성이 다른데, 원하는 카드를 뽑으려고 해도 현재 재고가 없다”며 “좋아하는 선수의 핑크 홀로그램 카드를 구하기 위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할 예정이다. 몇몇 카드는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들려줬다.

카드 컬렉션 인기가 심상찮다. ‘트레이딩 카드(Trading Card)’로도 불리는 카드 컬렉션은 수집과 거래를 목적으로 판매되는 카드를 말한다. 애니메이션 카드나 유명한 스포츠 선수, 아이돌 연예인 카드가 대표적인 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마니아층 사이에서는 카드 한 장당 수천만원에 거래가 될 정도로 규모가 큰 시장이다. 최근 들어서는 대중적인 취미로 떠올랐다. 편의점 등 대중적인 판매처를 통해 카드 판매가 시작되면서다. 콘텐츠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카드 전성시대’가 본격화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매경이코노미

2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최근 야구팬 사이에서 화제인 ‘KBO 프로야구 컬렉션 카드(KBO 카드)’를 어렵사리 구했다. 사진은 KBO 카드.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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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에 따르면, KBO 카드는 판매 시작 3일 만에 물류센터 재고 100만팩이 모두 소진됐다. (윤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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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컬렉션이 뭐길래?

마니아 문화서 대중 취미로

‘트레이딩 카드’로 알려진 카드 컬렉션 시장은 국내에 도입된 지 꽤 오래됐다. 1990년대 초창기 미국 농구 리그 NBA의 스타 사진이 담긴 스포츠 카드를 중심으로 시장이 커졌다. 이후 범위가 확장됐다. 2000년대부터는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타고 유희왕·포켓몬·디지몬 같은 캐릭터 관련 카드가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부터는 연예계의 ‘포토 카드’ 굿즈가 등장하면서 아이돌 팬덤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었다.

수집가 사이에서는 거래도 활발하다.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아이돌 포토 카드, 스포츠 카드의 판매·교환 게시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네이버 스포츠 카드 카페인 ‘월드스포츠카드’에서는 최소 몇만원부터 수백만원에 달하는 국내외 스포츠 카드가 거래되고 있다. 희소성 높은 카드는 단위가 천만원대까지 뛴다. 해외에서 카드를 사려는 수요가 많아서다. NBA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마이클 조던 NBA 카드나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스포츠 카드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다만, 그동안 대중적인 문화로는 취급받지 못했다.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카드 수집 취미가 자리 잡지 못한 탓이다. 일부 소수 수집가 또는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팬들만 카드를 사들였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편의점과 백화점을 비롯한 오프라인 판로를 타고 ‘대중문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기에 불을 붙인 카드는 ‘KBO 프로야구 컬렉션 카드’다. 현재 KBO 카드는 ‘없어서 못 파는’ 상태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KBO 카드는 판매 시작 3일 만에 물류센터 재고 100만팩이 모두 소진됐다. 6월 넷째 주에 2차 물량을 준비했는데, 이마저 순식간에 동났다. 송파구 한 세븐일레븐 편의점 직원은 “매장에 5박스만 들어왔는데, 한 팩에 1000원이라는 낮은 가격 때문인지 진열하자마자 두 명의 손님이 5박스를 모두 사갔다”며 “찾는 사람이 많지만 재고가 없어 판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세븐일레븐이 카드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부터 적극적으로 스포츠 카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K리그 파니니 카드를 시작으로 KBL(한국농구연맹), KOVO(한국배구연맹) 선수 카드 등 5종을 차례로 선보였다. K리그 파니니 카드는 총 150만팩이 판매됐다. 해당 카드를 포함해 현재까지 판매된 스포츠 카드 판매량은 모두 350만팩 이상이다. KBO 카드 판매량까지 반영되면 세븐일레븐 스포츠 카드 상품군 매출은 더 가파르게 오를 전망이다. 실제로 KBO 카드가 판매를 시작한 지난 6월 12일부터 17일까지 세븐일레븐의 완구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6배 늘어났다.

이마트24는 지난 3월 대원미디어와 손잡고 ‘SCC KOVO프로배구 카본카드(박스)’ 500개를 한정 예약 판매했다. 7월 7일까지는 걸그룹 스테이씨의 앨범 ‘메타모르픽’을 단독 판매하는데, 사전 예약을 통해 앨범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스테이씨 포토 카드를 랜덤 증정한다.

백화점 중에서는 신세계백화점이 카드 굿즈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5월 10일부터 23일까지 강남점에서 구독자 250만명에 달하는 인기 유튜버 ‘침착맨’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팝업 첫날에는 오픈 전부터 300명 이상 대기줄이 생기며 이른바 ‘오픈런’이 펼쳐졌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굿즈는 침착맨이 직접 디자인한 한정판 포토 카드였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침착맨 포토 카드는 초판과 추가 제작 판매까지 포함 약 6만장이 판매됐다”며 “침착맨 포토 카드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이미지를 넣은 것이 아니라 카드 QR코드에 접속하면 방송 콘텐츠 중 인기 영상으로 연결되는 등 재미 요소가 추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원미디어 관계자는 “과거에는 카드 판매처가 전문점이나 문방구로 한정돼 있었다. 전문가만 사들이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최근 익숙한 오프라인 플랫폼인 편의점과 백화점에서 판매를 시작하면서 카드 산업이 좀 더 대중에게 친숙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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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열린 유튜버 침착맨 팝업스토어에서는 침착맨이 직접 디자인한 한정판 포토 카드가 인기를 끌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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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르로 자리 잡을 것

단, 사행성 이슈는 유의해야

포토 카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고물가와 디지털 문화가 겹치면서 아날로그 기념품의 가치가 생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고물가 시대에 자신을 위한 소비를 위해 아날로그적인 포토 카드를 구매하고 SNS에 자랑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며 “포토 카드는 디지털 문화와 팬덤 문화가 낳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하나의 문화 장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판매사가 랜덤 포토 카드 형식을 마케팅으로 활용해 팬들의 구매를 유도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랜덤 카드 형식으로 판매하는 건 불필요한 구매를 유도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런데도 랜덤 카드 형식으로 판매하는 경우에는 당첨 확률을 공개하고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6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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