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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만물상] ‘급발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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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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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911센터에 급박한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액셀러레이터가 제멋대로다. 속도가 시속 120마일(193㎞)까지 치솟았다.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 고속도로가 곧 끝나는데, 오 하나님.” 전화 신고 직후 도요타 렉서스 ES350은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졌다. 운전자는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베테랑 운전사였다. ‘도요타 페달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미국 ABC방송이 이 911 신고 전화를 공개하자 난리가 났다. “남편이 도요타 차를 사주면 생명보험부터 확인하라”는 블랙 유머까지 등장했다. 도요타는 자체 조사 후 “잘못 설계된 운전석 바닥 매트가 액셀러레이터를 물어서 생긴 사고”라면서 대규모 리콜을 발표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까지 나서 차량 전자 제어 장치(ETCS)의 이상 여부를 조사했지만 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3년 뒤 다른 급발진 주장 소송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 소프트웨어(SW) 업체가 ETCS 시스템 내 메모리 영역에서 SW 간 간섭 현상이 급발진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를 ‘30초 급가속 재현 실험’으로 밝혔다고 했다. 결국 도요타는 소비자 기만 혐의에 대한 ‘기소 유예’ 처분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 법무부에 벌금 12억달러를 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도요타 캠리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2009년 렉서스 사고의 증거는 되지 못했다.

▶엊그제 사상자 15명을 낸 시청역 교통사고 운전자는 “100% 급발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법원 판결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운전자가 차량 결함을 증명해야 하게 돼 있어 원인 규명이 더 어렵다. 전문가 중에는 차량의 전자적 제어, 자동 변속기, 전기차 증가와 함께 급발진 사고가 늘었다는 점을 들어 ‘전자적 문제’가 주원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급발진 사고 중에는 운전자가 가속기를 밟고도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착각한 경우가 많다. 해법으로 모든 차량에 운전자 발을 찍는 블랙박스를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마디로 아직도 ‘급발진’은 미스터리다.

▶급발진이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내 차에 급발진 징후가 있다면 운전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변속기를 중립(N)으로 바꾼 다음,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고, 가드레일, 가로수 등 멈출 수 있는 물체를 들이받으라고 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실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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