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4 (목)

[단독]빚 상환 부담에 폐업도 못 한다···‘폐업할 결심’ 실행까지 1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23년 소상공인 재기 실태조사

폐업시 평균 부채 1년새 3600만원↑

경향신문

2일 서울 중구 명동 번화가의 한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7.2 성동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는 경기도 용인에서 396㎡(120평) 규모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매달 적자에 인건비만 나가는 사업을 접겠다고 마음 먹은 건 수개월도 더 됐지만, 폐업을 실행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돈 때문이다. 매장 원상복구를 위한 철거비, 통신사 위약금, 남은 월세 등 가게 문을 닫는 데만 최소 3000만원이 필요했다. 폐업 시 일시 상환해야 하는 기존 대출의 원리금 부담도 컸다. 코로나19 때부터 지금까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3억원을 넘는다. A씨는 “매출의 40%를 원금 상환과 대출이자로 내면서 마이너스 상태”라며 “마음 같아선 당장 빚을 청산하기 위해 구직에 나서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마냥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폐업을 결정한 소상공인들이 실제 가게 문을 닫기까지 평균 1년 가량 소요된 것으로 파악됐다. 빚은 늘었지만 고금리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데다, 경기 부진으로 신규 임차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경제 순환이 그만큼 지체되고 있다는 의미인데,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채무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일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3년 소상공인 재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소상공인들이 폐업을 위해 사업정리 컨설팅을 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행정적으로 폐업을 완료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1.9개월로 전년 대비 3.9개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폐업한 2011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 조사에서 폐업 소요기간을 1년 이상이라고 꼽은 비율은 33.8%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3개월 이상~6개월 미만(26.3%), 6개월 이상~9개월 미만(16.7%), 3개월 미만(15.8%), 9개월 이상~12개월 미만(7.5%)이 이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폐업에 걸리는 시간은 더 길었다. 폐업 소요 기간을 ‘1년 이상’으로 꼽은 비율은 60대 이상과 50대 이상이 각각 42.8%, 38.2%로 가장 높았다. 재창업이나 재취업 등 새로운 도전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폐업 소요 기간이 늘어진 1차적 원인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많은 소상공인이 매장을 이어받을 신규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대출금 상환 부담도 폐업을 미루는 주된 이유였다. 현재 시중은행과 2금융권 등에서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이 폐업으로 영업을 중단하게 되면, 대출금 전액을 일시에 상환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근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소상공인들의 부채가 늘고 매출은 줄어 폐업 시 체감하는 원리금 부담이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 사업체를 폐업할 때 소상공인이 짊어진 평균 부채는 7830만원으로, 1년 새 3684만원 가량 늘었다. 반면 매출은 저조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소상공인 경영 실태 및 정책 과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지난해 월평균 영업이익은 507만원으로, 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나가는 289만원을 제하면 순수익은 218만원에 그쳤다.

경향신문

소상공인 폐업 현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폐업에 걸리는 시간이 지연된다는 건 그만큼 경제 전반의 순환이 막혀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정치권에선 폐업 시 대출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오세희·송기헌 민주당 의원 등은 소상공인이 폐업했을 때 정책자금 대출 등에 대해 원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여당은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의 채무조정을 돕는 새출발기금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대환대출 적용 대상을 중저신용자로 넓히겠다는 소상공인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채무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은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출발기금의 실적이 여전히 저조한 것은 현장에서 신용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용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 때 강제적인 행정 조치로 불이익을 당한 소상공인 채무를 일부 탕감해 재기를 독려하는 기반을 먼저 만들어야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도 “코로나19 당시 영업제한 등 행정조치로 피해를 본 사람은 정책자금 융자 채권을 정부가 매입해 관리해야 한다”며 “대신 코로나19 이후 단순히 경기가 나빠지면서 생긴 부채에 대해선 정부가 정책자금을 끊어내야 이들이 연명하지 않고 임금 노동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오세희 의원은 “폐업을 고민하는 소상공인들은 이미 지불여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므로 폐업지원금을 상향하고 폐업 시 대출금 상환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며 “신속한 업종전환 및 재취업도 지원해 경제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5·18 성폭력 아카이브’ 16명의 증언을 모두 확인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