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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알바니아 문학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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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알바니아 문학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생전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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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문학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가 1일(현지시각) 별세했다. 독재에 시달리던 조국의 현실을 특유의 은유와 풍자로 고발해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에 올랐던 세계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향년 88.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이날 알바니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카다레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난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이던 1953년 시집 ‘서정시’로 일찌감치 글쓰기에 눈을 떴다. 티라나대학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러시아 모스크바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공부한 뒤 1960년 고국에 돌아왔다.



1963년 펴낸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단숨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0여 년 뒤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어느 외국인 장군이 알바니아에 묻힌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찾는 과정에 전쟁의 추악함과 부조리를 폭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9년 프랑스 르몽드 지가 뽑은 ‘20세기 100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향인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에서 독일 나치와 파시스트 군대를 보며 자랐던 그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에 전쟁의 어두운 면을 투영했다고 한다. 생전 그는 “이 소설에서 버려지고 잊힌 자들을 통해 전쟁의 공허함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이 카다레에게 국제적인 유명세를 안겼지만, 한편으로는 알바니아 독재자로부터 감시를 받게 하는 계기가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카다레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고 한다. “‘죽음’을 뜻하는 나의 신념을 따르는 것, 또 다른 종류의 ‘죽음’을 의미하는 완전한 침묵, 또는 일종의 뇌물인 헌사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세번째 선택을 했고, 정권 입맛에 맞는 소설 '위대한 겨울'(1977)을 썼다. 하지만 1981년, 다시 그는 독재 정권을 비판한 시 '꿈의 궁전'을 발표하며 제자리를 찾았다. 이후 카다레는 반세기에 걸쳐 작가로 활동하며 '돌의 연대기', '부서진 사월' 같은 작품을 비롯해 소설, 시, 에세이 등 수많은 책을 냈다. 1990년에는 알바니아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정부를 비판한 뒤, 프랑스로 망명했다. 지난 2022년 알바니아로 돌아갔고, 고향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2005년, 소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생존 작가에게 수여하는 제1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이후 2009년 스페인의 아스투리아 왕자상, 2015년 예루살렘상, 2019년 박경리문학상, 2020년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을 등을 수상했다.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두번이나 받았다. 그는 1998년 한 인터뷰에서 “책을 쓸 때마다 나는 독재 정권에 칼을 꽂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만 여러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도 결국 수상자로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카다레가 조지 오웰이나 프란츠 카프카에 비교되기도 했으며,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은밀한 비판을 담은 작품으로 정치적 외줄타기를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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