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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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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월 사상 첫 평균 30도…폭염∙폭우 '복합재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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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무더위가 계속되는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양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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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복숭아가 너무 빨리 익어서 알이 굉장히 작아요. 기온이 30도가 넘어가면 그냥 익어버리거든요 "

충북 괴산에서 과수원을 하는 이용희 씨는 올해 복숭아 농사를 망쳤다. 때 이른 폭염 때문이다. 원래 170g 정도인 열매가 지금은 130g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높은 기온으로 복숭아 열매가 미처 크기도 전에 생장을 끝낸 탓에 경매 가격이 폭락했다. 이제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콩 농사를 걱정해야 한다. 이씨는 “작년에도 밭이 물에 잠겨 비만 오면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정도다. 올여름이 많이 무섭다”고 말했다.

6월 한 달간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진 데 이어 전국 곳곳에 ‘물폭탄’ 수준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폭염과 폭우라는 여름철 극한기상이 동시다발로 한반도를 덮치는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나타나는 여름철 기후 패턴은 깨졌다. 폭염과 폭우 등 극한기후현상이 연속적이거나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면서 발생하는 ‘복합재해(complex hazards)’에 대비해야 한다는 기상학자들의 경고가 나온다.



역대 가장 더웠던 6월 “7월엔 40도 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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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중앙일보가 기상자료개방포털을 통해 6월 기후를 분석해보니 서울의 6월 평균 최고기온은 30.1도였다. 1908년 여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117년 만에 최고치다. 기상청 관계자는 30일 “초여름인 6월에 서울의 한낮 기온이 평균 30도를 돌파한 건 기상 관측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예년의 한여름인 7월(29도)과 8월(30도)보다 더 무더웠던 셈이다.

전국 폭염일(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수 역시 2.8일로 기상 관측망을 전국으로 확대한 1973년 이래 가장 많았다. 최악의 더위로 기록된 2018년(1.5일)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을 정도로 압도적인 6월 폭염 기록이다. 폭염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동해안을 대표하는 강릉 경포해수욕장은 지난달 29일에 문을 열었는데, 6월 개장은 올해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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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개장한 강원 강릉 경포해수욕장을 방문한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날 개장한 경포해수욕장은 8월 25일까지 운영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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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북반구의 많은 지역이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7월에 북태평양고기압이 올라오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것”이라며 “서울에 40도가 넘는 역대급 폭염과 가장 많은 열대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극한호우에 잠긴 제주…장마 공식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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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 굵은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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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기세는 더 심상치 않다. 주말 전국 곳곳에는 물폭탄 수준의 폭우와 함께 거센 돌풍까지 불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 지역은 지난달 19일부터 29일까지 368.6㎜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해 1973년 관측 이래 같은 기간 두 번째로 많은 장맛비가 내렸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는 지난달 29일 오후에 시간당 81㎜에 이르는 극한호우(시간당 50㎜ 및 3시간 누적 90㎜ 이상)가 쏟아지면서 도로가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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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전통적인 장마철엔 비가 전국에 고르게 내렸지만, 최근에는 집중호우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 역시 강해지고 있다. ‘도깨비 장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극한호우 현상 역시 50년 전보다 75%가량 증가했다. 기상청 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인 장은철 공주대 교수는 “우리나라 주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가 더 불안정해지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리는 강수 형태가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이번 주에도 정체전선(장마전선)이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시간당 최대 50㎜에 이르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해지는 폭염과 폭우…사우나에 갇힌 듯 무덥다



초여름부터 폭염과 폭우가 맞물려 나타나면서 복합재해의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올여름에는 폭염과 폭우의 강도가 모두 강할 것이란 예측이 많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기상청은 7~8월에 기온과 강수량 모두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한쪽에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비가 내리지 않은 지역에서는 높은 습도로 인해 마치 사우나 안에 있는 것처럼 ‘습한 폭염’이 나타날 수 있다. 반 센터장은 “기온은 이미 동남아보다 높은 수준이고, 비도 게릴라성으로 국지적인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등 우리나라의 여름은 이미 아열대화됐다”고 말했다.

습윤 폭염은 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건강에 더 치명적이다. 습도가 높으면 대기에서 몸에 있는 수증기를 잘 뺏어가지 않아 열 배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습한 폭염이 10년마다 최대 2일 정도씩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 “기후변화로 인해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으면서 습윤 폭염은 미래에 더 강해질 것”이라며 “폭염에 취약한 야외 노동자 등에 대한 관리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물가 회의에 기상청장 부른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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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강원 강릉시 송정동 들녘에서 농민들이 폭염을 피해 아침 일찍부터 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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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climate+infla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여름철 이상기후가 물가 상승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는 2035년까지 온난화와 폭염으로 식품 물가가 연간 최대 3.2%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올여름에도 역대급 폭염과 장마의 영향으로 농산물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물가TF를 가동 중인 대통령실은 최근 기상청장을 불러 국내외 기후 동향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물가 회의에 기상청장이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젠 기후변화에 따른 물가 상승에도 정부가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후가 변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물가 문제와 관련해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논의를 했다”고 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복합재해는 농작물 피해를 넘어 농작물의 공급량 부족으로 인해 시장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복합재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과학적인 예측 및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정은혜·박태인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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