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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프랑스 총선, ‘유로화 붕괴’의 도화선? [조은아의 유로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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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예기치 않게 닥친 조기 총선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다음달 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마저 이달 30일과 다음달 7일로 이어지는 총선에 묻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조기 총선 발표로 올림픽 홍보가 지장을 받았다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조기 총선은 프랑스 내부 사정으로 비쳐지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유럽 전역을 흔들 사건이란 우려가 나온다. 총선에서 승리가 우세한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면 민족주의적 표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프랑스 경제가 불안해지고, 무역이 위축될 수 있다는 얘기다.

● 佛기업들 “선거 탓에 주문 감소”

프랑스 총선은 30일 1차 투표에서 지역별로 과반을 얻는 후보가 없으면 다음 달 7일 2차 결선 투표에서 최다 득표자를 승자로 결정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RN이 35%의 지지율로 1위가 되고, 좌파 4개 정당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27%로 2위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비해 집권당 르네상스는 2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동아일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 파리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본부의 TV 화면에 보이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자신의 중도 동맹이 극우 정당에 패배한 후 조기총선을 전격 발표한 그는 프랑스가 올바른 선택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10일 밝혔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2024.06.10. 파리=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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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한 당 대표가 총리로 추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중도 성향인 마크롱 대통령과 동거정부를 꾸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프랑스 정치사에 전례 없는 ‘중도 대통령-극우 총리’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프랑스 기업들부터 걱정이 앞선다. 프랑스 기업들은 이번 선거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경제 활동을 급격히 둔화시켜 주문이 감소된다고 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기업 활동을 보여주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월 48.9에서 6월 48.2로 하락했다. 성장 여부를 구분하는 50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신규 주문이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번 조사에서 프랑스 기업 구매 담당자 일부는 이번 기업 활동 감소가 선거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답했다. 함부르크 커머셜 뱅크의 노먼 리브케 이코노미스트는 “다가오는 선거의 불확실성으로 프랑스 기업들이 힘든 시기를 두려워하며 정체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 극우 감세공약, 재정 악화 우려

투자자들이 극우 정당의 집권을 우려하는 이유는 감세 정책에 있다. RN의 감세 정책이 프랑스 재정 악화를 심화시켜 프랑스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란 얘기다. 바르델라 RN 대표는 전 국민에 대한 부가가치세(VAT) 인하와 39세 이하에 대한 세금 감면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현 집권당 르네상스는 RN이 세금은 깎아준다면서 대신 어디서 세금을 걷어 세수를 충당할지는 제시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재정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 정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RN이 마크롱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한 연금 개혁을 취소하고 법정 퇴직 연령을 현재 추진 목표인 64세에서 기존 62세로 되돌리겠다고 한 점도 문제다. 장-필립 탕기 RN 재정 담당자는 현지 방송인 프랑스앵포에 출연해 “당이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을 취소하고 법정 퇴직연령을 62세로 되돌리려면 정부가 90억 유로(약 13조3000억 원)를 지출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다른 조치로 보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RN이 연금 개혁을 폐기하면 재정에 더 부담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佛 경제혼란, 유로화 위기 촉발”

프랑스 재정 적자는 안 그래도 심각한 상황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프랑스 재정적자가 2027년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낮췄다.

감세 정책과 연금 개혁 폐기로 재정에 무리가 되면 프랑스 정부는 부채 상환에 큰 부담을 안게 되고, 재정을 적극적으로 쓸 수 없으니 경기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정치 초보’ 정당의 리더십도 경제에 악재다. 프랑스 증권거래소 운영을 맡은 유로넥스트의 스테판 무이나 최고경영자(CEO)는 프랑스앵포에 “한 번도 통치한 적이 없는 정당이 권력을 잡으면 완전히 불확실한 미지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경제 위기는 유럽에서 단일통화로 쓰이는 유로화 가치 하락까지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가 국수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면서 경제와 사회 위기를 일으키고, 유로화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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