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지급’ 사유에 이주비·분담금용 포함…신축 가격 재산정 방안
금융위에 검토 요청…전문가들 “노후 보장용 취지 어긋난 무리수”
금융위원회는 “검토 중”이라고 했으나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이지만 노후소득 보장용인 주택연금 취지에 맞지 않고 1기 신도시 재건축 흥행을 위한 무리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2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토부는 최근 금융위에 주택연금(주택담보노후연금보증)의 일시지급 사유에 재건축·재개발 이주비와 분담금을 포함하고, 주택 가치(시세)를 재산정할 수 있는지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55세 이상 주택 소유자가 한국주택금융공사에 집을 담보로 매월 일정액을 평생 또는 일정기간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에는 의료비·교육비·주택유지수선비·관혼상제비 등의 사유로 대출 가능액의 50%까지 일시적으로 꺼내 쓸 수 있는 ‘개별인출제도’가 있다.
국토부는 고령 주택 소유자들의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동의율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 주택연금의 개별인출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을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했지만 최근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기존 주택(토지) 소유주의 분담금 부담이 높아졌다. 특히 소득이 적은 고령층은 과거와 같은 높은 개발 이익을 확신하지 못하고, 사업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주비와 분담금 마련이 부담스러워 개발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최근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정비사업형 주택연금 도입안’ 보고서에서 재건축·재개발에 주택연금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국토부가 이 보고서를 금융위에 전달하면서 긍정적 검토를 요청한 것이다.
금융위는 일단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시지급 사유를 확대하면 전국 모든 정비 사업 대상에 적용될 수 있어 더욱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주택 가치를 재산정할 경우 주택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국토부가 1기 신도시 재개발 사업 흥행을 위해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지윤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연금은 공기업(주택금융공사) 보증으로 은행이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면서 “개인의 재산 가치 상승이라는 재건축에 공적 자금을 활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주택연금 구조가 담보물건인 주택 가격이 내려가도 가입자가 이를 책임지지 않는 구조인데 재건축 후 자산 가치를 재산정해서 반영해달라는 것은 주택연금 제도 자체를 흔드는 주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택연금은 집값이 내려가도, 가입자가 오래 살아 연금지급액이 평균보다 많아도 가입자가 기금 손해액을 물어내지 않는다”면서 “가치 재산정을 주기적으로 하면 주택연금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1기 신도시가 재건축·재개발의 사업장이 나오기 쉽지 않다 보니 흥행을 위해 주택연금을 희생양 삼고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1기 신도시 지자체(경기 성남·고양·안양·군포·부천)는 25일 공모지침을 내고 재건축 선도지구 공모를 시작한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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