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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김형석의 100년 산책] 105세 교수가 고교 1학년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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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늦은 봄이었다. 100세를 앞둔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을 중심으로 몇 원로가 점심을 같이 하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가 더 오래 젊게 많은 일을 하는가’라는 화제가 되었다. 내가 슬그머니 부끄러운 내 자랑을 했다. “금년에도 다음 주간에 양구 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대화시간을 갖는다”라고. 모두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100세가 넘은 늙은 교수가 10대의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나는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 때의 내 고민을 그대로 들려준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고

평생 지식 쌓고 사고력 길러야

게으른 사람 목적지 도달 못해

인생의 마라톤 끝까지 달리기를

친구 윤동주·황순원의 다른 선택

중앙일보

그림=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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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나는 학생들과 같은 나이에 독서를 많이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두 차례 들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해 교육계에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겠다는 뜻을 세웠다. 함께 공부한 윤동주는 시인이 되고, 황순원은 소설가가 되기를 원했다. 홍창의는 소아과 의사가 되어 가난으로 일찍 목숨을 잃는 어린 애들을 돕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를 고민했다. 지금은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예를 들면 체육 선생이 운동의 기초인 100m 경기가 중요하니까 100명 학생에게 ‘이제부터 100m 경기를 연습해서 한 달 후에 누가 상을 받는지 보자’라고 했다. 1, 2, 3등은 상을 받고 97명은 인정받지 못했다면 선생의 잘못이다. 100명 학생에게 각자가 원하는 재능과 체질에 맞는 경기를 찾아 연습하라고 했다면 100명이, 100가지 경기를 택해 모두가 1등을 차지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사회는 다양한 체육 선수를 키울 수 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 각자의 길을 찾아 즐겁게 성장했고 그 뜻이 이루어져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선택과 성공의 길이 주어져 있다.

처칠과 아인슈타인의 위대함

둘, 학생 때는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학문과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 하는 공부는 기초적 과정이다. 지식은 평생 성장하는 것이며, 학문은 선택에 따르는 다양성이 있다. 문과나 이과는 초보적인 구별이다. 그리고 지식과 학문은 각자의 노력에 따라 발전하며 다양한 분야의 전공이 뒤따른다.

누구나 16, 17세까지는 기억력이 왕성하게 자란다. 기억력이 좋은 학생일수록 좋은 성적을 차지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후반부터 대학 초반까지는 이해력과 변별력이 커진다. 위로 자라기보다 옆으로 풍부해진다고 보아도 좋겠다. 생활도 바뀐다. 친구들을 사귀고 교과서보다 폭넓은 독서가 필요해진다. 그러다가 대학 상급반이나 청년기가 되면서는 가장 소중한 사고력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 사고력은 60세, 70세가 넘도록 지속된다. 인간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평생에 걸친 가능성이다. 더 뛰어난 영재나 천재가 된다는 것은 그런 사고력에 직관력이 갖추어질 때이다. 지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된다는 것은 그런 사람을 말한다. 직관력이 창조적 추리력까지 겸비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에 가장 위대했던 영재는 영국의 처칠 수상이다. 처칠은 사관학교 입시에 낙방했던 사람이다. 그의 영재적 소질은 50세 이후에 발휘되었다. 가장 놀라운 천재 아인슈타인도 대학 입시에 실패한 과거가 있다. 그가 상대성원리를 창안해 대학 때 은사에게 보여 주었다. 그 교수는 “내가 너를 지도할 때는 평범한 학생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이 업적 때문에 영원히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었다”며 선망의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능시험 결과로 성적을 따지며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사고력의 결과까지 기다려 보아야 한다. 대학원에 가서야 그 진가를 가릴 수 있다. 나무는 오래 크게 자라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다양한 정신문화의 창조력을 갖춘 학자들이 탄생해야 우리나라도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문화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도 대학 안 나와

셋, 행복과 성공은 모두가 원한다. 그러나 실패와 불행으로 끝나는 사람이 많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마라톤 경기를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 길을 달리지 않고 이길 저길 엿보면서 헤매는 사람은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교육도 그렇다. 100리 길이 주어져 있다면 초·중·고등학교까지 30리는 나라가 교육을 맡아 준다. 대학에 안 가거나 못 가는 사람은 나머지 70리 길을 국가 교육 기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60리는 더 가야 성공한다. ‘나야 대학에도 다니지 못했는데, 할 수 없지’ 하는 사람은 70리를 포기한다. ‘나는 대학까지 다녔는데 더 배울 것이 있나?’ 라고 중단하면 60리를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다.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다. 우리나라 경제계의 은인인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모른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을 중퇴한 것으로 안다. 지금은 모교를 삼성그룹에서 맡아 운영하고 있다. 종근당 제약 이종근 회장과도 가까이 지냈다. 초등학교 출신이다. 그가 국내 국외에서 교육사업을 돕는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중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계속 공부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대학 출신 보다 중책을 맡은 지도자들을 나는 여러 사람 대해왔다. 주어진 책임과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과 행복을 찾아 누린다.

학생들과 대화하는 나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고 30대가 되면서 대학교수가 되어 30여 년 봉사했다. 다른 교수들은 정년이 되면 직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가는 때에도 다시 시작해 사회교육에 몸담았다. 지금까지 40년을 사회교육과 정신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제자와 사회인에게 사랑이 있는 교육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여러 학생 중에서 나보다 더 크게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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