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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난세’, 나라가 다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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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았다. 뭉개고 버틸수록, 채상병·김건희 특검은 윤석열 특검이 될 게다. 분기점은 진실과 위법이 가려졌을 때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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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와 6·25. 한반도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두 날이다. 2000년 6월15일 남북 정상의 첫 회담이 열렸고,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 탱크가 밀고 내려온 개성·철원·금강산 길은 50년 뒤 경협·관광·이산상봉 길이 되었다. 지금, 그 육로엔 지뢰가 재매설되고, 철도 침목이 뽑히고, 벽이 쳐지고 있다. 그 하늘로는 전단·오물 풍선·확성기 소리가 오간다. 핫라인 끊기고, 두 적대국이 험담하며, 9·19 군사합의는 파기됐다. 6월 한반도는 ‘정전(停戰)의 땅’으로 되돌아갔다.

안보뿐인가. 민초들의 아우성이 차오른다. 금사과·금배가 가을까지 간다더니, 귤·복숭아·김에도 ‘금’자가 붙었다. 삼겹살 2만원이 뚫렸다. 버스·택시·난방·전기요금 다 올랐다. 물가·전셋값 뛰니, 씀씀이 줄고, 일자리·소득도 마르는, 참 모질고 긴 불경기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최고치로 치솟고, 한우 농가는 ‘소 반납 시위’를 잡고, 더워지는 바다에 양식장은 잠 못 잔다. 어찌 살라는 건가. 안전하고 먹거리 많은 곳에 새는 둥지 틀고 알을 낳는다. 사람도 다를 리 없으나, 오늘 이 땅은 그렇지 못하다.

난세다. 나라가 서 있다. 20%대 대통령 지지율은 두 달째 서 있다. 의·정 치킨게임은 출구 없이 120일째 서 있다. 한덕수 총리 사표를 물린 후 인사가 섰고, 1% 차로 좁힌 연금개혁이 섰다. 여야 대화가 섰고, 두 쪽 난 국회에선 민생 입법이 섰다. 국정 동력도 민심도 국회도 서버리니, 뭐 하나 매듭되는 게 없다. 부릉부릉 공회전만 하는 나라가 됐다.

그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았다.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은 “국민 뜻 존중” “국정 쇄신” “민생 안정”을 약속했다. 지켜졌는가. 대놓고 대통령 거부권을 활용하라니, 여의도와 용산 사이에서, 소수 집권당은 설 자리를 잃었다. 야당·비판언론에만 칼 휘두르는 ‘검찰국가’도 그대로, 미래세대 부담이 될 세수 펑크에 부자감세로만 달려가는 것도 그대로다.

이 여름, 용산은 ‘불난 호떡집’이다. 의혹투성이 동해 석유가스전으로, 김정숙 여사 인도 방문으로, 중앙아시아 순방으로 화두를 돌리려 하나 힘이 부친다.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동해 유전)을 성인 60%가 안 믿는다. 새 민정수석 얼굴이 파래졌을 게다. 세상은 채 상병과 김건희에 꽂혀 있다. “이런 일로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 해병대에 알려진 ‘격노’든, 여권에 흘러나온 ‘역정’이든, 대통령실이 인정한 ‘야단’이든 거기서 거기다. 공교롭게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 전화한 그날, 이 사건은 180도 바뀌었다. 장관이 승인한 수사 이첩이 멈추고, 사단장 혐의가 빠지고,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몰렸다. 들통난 녹취와 증언이 묻는다. 외압 시발점이 ‘대통령’이냐고, 그 목적이 ‘임성근 구하기’였냐고. 김건희 명품백은 ‘외국인이 줘 문제없다’는 국민권익위 궤변이 다시 불질렀다. 선사후공(先私後公)하고 부끄러움을 잊은 성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협치냐, 대치냐. 대통령은 기로에 섰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일 첫 대통령이 택할 국정은 협치뿐이다. 영수회담 정례화, 구동존이를 찾는 민생협의체 같은 것이다. 하나, 총선 후 야당의 특검법과 연금개혁안을 거부한 대통령의 착점은 반대다. 힘 대 힘으로 가보자는 쪽이다. 뭉개고 버틸수록, 채 상병·김건희 특검은 윤석열 특검이 될 게다. 분기점은 진실과 위법이 가려졌을 때다. 권력자의 악몽이라면, 세 가지가 아른거릴 게다. 벼랑 끝에서, 대통령이 절충·주도할 마지막 리더십은 ‘임기 단축’을 열어둔 개헌이다. 1987년 ‘6·29 선언’이 그랬다. 그 길까지 벗어났을 때, 1972년 미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거짓말로 사임했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국민적 분노로 탄핵됐다.

“진실을 마주하고 밝히는 힘이 있는 나라가 진정한 국민의 나라다.” 2022년 6월, 윤 대통령은 서해에서 아버지가 북한군에 피살된 후 ‘꿈과 봄날을 잃었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대통령의 말은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모든 게 멈췄다’는 채 상병 어머니의 편지에도 보내져야 한다. 절절한 그 글은 1주기(7월19일)까지 진실 규명, 지휘관 문책,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명예회복과 선처를 갈구했다.

한 달 뒤다. 이 대치면, 정치는 출구 못 찾고 세상의 긴장은 계속 높아질 게다. 21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 사건의 ‘키맨’ 이종섭·임성근·유재은·박정훈이 공개 대좌한다. 마지막 답은 국가가 해야 한다. 대통령의 몫이다. 있는 대로 밝히고, 국민 눈높이로 참회·탈태하고, 책임 있게 결단해야 한다. 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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