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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수)

[과학기술이 미래다]〈128〉세계 10번째 TDX 기술 개발 쾌거…1가구 1전화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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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전두환 대통령이 1987년 7월 1일 전국전화자동화완성 기념식이 끝난 뒤 한국전기통신공사 전시실에서 지역 주민과 기념통화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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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은 국가 명운이 걸린 지상과제였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는 1983년 1월 말부터 일주일 동안 대덕연구단지 내 새 건물로 이사했다. 기혼자들은 사택, 미혼자들은 기숙사에서 각각 생활했다.

연구소의 가장 시급한 일은 연구원 확대였다. 연구소는 처음 26명에 불과하던 개발단 연구원을 계속 증원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 연구원 60여명을 충원한 데 이어 이공계 대학 졸업생 가운데에서 신규 인력을 선발했다. 이들은 병역을 면제받는 병역특례자였다.

양승택 연구소 시분할개발단장은 그해 1월 개발단에 소프트웨어개발연구실을 신설했다. 실장에는 천유식 박사를 임명했다. 양 단장은 매주 회의를 열어 현안을 챙기면서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

1983년 2월 26일 전자통신개발추진실무위원장인 오명 체신부 차관은 체신부 회의실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체신부, 과학기술처 등 실무위원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TDX 개발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에 TDX 사업단과 품질보증단,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에 TDX 개발단을 각각 설치하는 조직 신설을 결정했다. 통신연구소에는 이미 시분할교환기 개발단을 설치해서 양승택 박사가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명칭을 TDX 개발단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조직 신설은 오명 차관의 아이디어였다. 추진 전략은 치밀했다.

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당시 체신부 차관)의 회고.

“나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포병용 컴퓨터를 개발해 본 경험이 있어 개발 이후 상용화까지 거쳐야 할 여러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통신업계는 품질보증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군용부품은 굴렸을 때, 떨어뜨렸을 때, 더울 때, 추울 때,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성능 변화 등 무척 까다로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나는 TDX도 이런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오명 차관은 “연구소가 개발한 제품을 현장에서 말썽없이 사용하려면 엄격한 품질보증과 시험 평가가 중요하다”면서 “이 모든 일을 맡아 줄 사람이 바로 TDX사업단장”이라고 판단했다.

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의 계속된 회고.

“이 자리는 남에게 욕먹는 자리다. 간섭을 받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욕먹을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일찌감치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을 지낸 서정욱 박사였다.”

그해 4월 12일 전두환 대통령이 이날 오후 한국전기통신연구소를 시찰했다. 전 대통령은 백영학 소장으로부터 주요 기술 개발 현황을 보고받고 전자식교환기, 디지털광통신시스템, 비디오텍스시스템 등 연구개발(R&D) 전시품을 둘러보았다.

이날 제1연구동 2층에 설치한 TDX-1X 시험기 앞에서 박항구 TDX 개발단 부장이 개발 상황을 보고했다. 이날 있었던 에피소드.

박항구 소암시스텔 회장(당시 TDX 개발단 부장)의 회고.

“제가 보고자로 결정되자 청와대 경호관이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손을 살짝 잡으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브리핑 5분 전에 청와대 경호관이 다시 와서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왼쪽 가슴쪽을 꽉 잡는 게 아닙니까. 담뱃갑을 양복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게 불록하게 튀어 나온 게 의심을 산 것입니다. 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반쯤 얼이 나갔어요.”

1984년 1월 13일 한국전기통신공사는 TDX사업단장 겸 품질보증단장에 서정욱 박사를 임명했다. '미쳐야 미친다'를 내건 서정욱 단장이 취임하면서 이른바 'TDX전쟁론'이 등장했다. TDX 개발은 전쟁과 같다는 게 서 단장의 주장이었다. 서 단장은 보고서 대신 현장제일주의를 실천했다. 또 TDX 성공을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 단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현장을 확인했고, 잘못한 곳에서는 으레 큰소리가 났다. 일에 관한 한 서 단장은 '독종'이자 완벽주의자였으며, 국내 처음 품질보증체계를 확립한 주역이었다.

박항구 소암시스텔 회장의 기억.

“서정욱 단장이 취임 후 얼마 안 돼 개발단을 방문했어요. 개발단은 매년 연구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대략 30권쯤 됐어요. 서 단장이 그 보고서를 꺼내 보더니 '이런 정신상태로 무슨 일을 하냐'고 호통을 쳤어요. 외부에서 만든 보고서 규격이 내부와 약 5㎜ 차이가 났거든요. '보고서 하나도 같게 만들지 못하면서 어떻게 TDX를 개발하겠냐'며 연구원들 기를 팍 죽였어요.”

TDX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연구소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밤을 잊은 채 연구에만 몰두했다.

6월 21일 전자통신개발추진위원회는 TDX-1 개발 참여 업체를 선정했다. 전자공업진흥회 추천을 받아 기존 금성반도체, 동양정밀, 삼성반도체통신 등 3개사 외에 대우통신을 추가했다.

당시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으로서 대우통신을 참여시킨 윤동윤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전 체신부 장관)의 증언.

“기존 금성반도체, 동양정밀, 삼성반도체통신 등 생산 3사는 개발 시늉만 할 뿐 전혀 진전이 없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생산 3사 대표를 체신부로 불렀습니다. 'TDX 개발은 꼭 성공해야 할 국가전략사업이다. 모든 업체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설용이건 구내용이건 교환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모두 TDX 개발에 참여시키겠다'고 했더니 3사가 모두 기득권을 내세워 반대했습니다. 계속 반대하면 실용시험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대우통신을 참여시켜 업체 간 개발 경쟁을 유도했습니다.”

7월 20일 임기가 끝난 백영학 통신연구소장 후임으로 전기통신공사 부사장이던 경상현 박사가 취임했다.

8월 29일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교환기 생산 4사로 지정한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대우통신, 동양정밀 등과 TDX-1 개발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9월 1일 체신부는 생산 4사별 추첨을 통해 상용시험 지역을 배정했다.

1986년 3월.

전두환 대통령은 홍성원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으로부터 TDX 개발 성공과 개통계획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5공화국이 추진해 온 TDX를 국내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이 사업은 정부와 기업 연구소가 혼연일체가 돼 성공시킨 기술 쾌거로, 우리나라도 최첨단 전자통신기술을 확보해 외국과의 구매와 기술협력 능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수입 원가 절감과 수입 대체 효과로 연간 4000만달러 외화 절약이 가능하고, 향후 2000년까지 28억달러에 이르는 교환기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국산으로 대체하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 일은 계획보다 1년 빨리 개발에 성공했다. 선진 6개국밖에 생산하지 못하던 TDX를 개발도상국인 대한민국이 개발하자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3월 14일 오전 10시 반 전북 무주, 경기 가평과 전곡(연천), 경북 고령 등 4개 지역에서 동시에 개통했다.

1987년 7월 1일 오전 10시 전두환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전화자동화 기념식에 참석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치사를 통해 “정부는 통신 분야에 빛나는 성과를 바탕으로 정보화 시대를 앞당기는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기념식에 이어 통신공사를 방문하고 전시실에서 강원 정선군 남면에 사는 조성진씨와 3분여 기념통화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

“TDX 국산화로 국내 전화 적체는 일거에 해소했다.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국의 동시 생활권 형성과 도시·농촌 간 균형발전을 촉진할 수 있었다.”(전두환 회고록2)

TDX 개발은 세계 열 번째 기술 쾌거이자 한국 통신혁명의 첫 결실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240억원 개발비 투입과 연구인력 1014명이 24시간 불을 켜고 연구에 매진한 결과였다. 연구진은 직위나 직책은 달라도 한국 IT 미래와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주역들이다. 인고의 나날이었지만 위대한 여정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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