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22개 언어로 더빙돼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제 더빙의 날’(매년 6월 12일)을 맞아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사무실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4명이 모여 작품별 더빙 수준을 분석했다. 분석한 작품 중 하나는 K-콘텐트 열풍의 시초격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021).
승부를 가리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구슬치기 게임을 앞두고 기훈(이정재)이 자신의 상대인 치매 노인 일남(오영수)에게 분노와 불안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당신은 (뇌에) 혹이 있어서 어차피 죽을 거라 상관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꼭 여기서 살아서 나가야 해, 나는 살아서 나가야 한다고!"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코리아에서 외국인 4명이 모여 작품별 더빙 수준에 대해 분석·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진 넷플릭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 타일러 라쉬(36)는 해당 대사가 영어로 더빙된 버전을 보고 “한국어보다 의미 전달이 더 잘 됐다고 느꼈을 정도”라면서 “배우가 영어로 말을 한 것처럼 입 모양이 잘 맞았고, ‘영감’을 ‘올드 맨’(old man)이라고 부르며 약간 낮춰 부르는 듯한 감정을 담아 목소리 연기를 한 덕에 기훈의 답답함이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프랑스어 더빙판을 본 줄리안 퀸타르트(37)는 “이정재와 비슷한 목소리가 불어권에 많이 없는데, 비슷한 연령대 남성을 성우로 잘 섭외해 몰입도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어 더빙판을 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43)와 포르투갈어 더빙판을 본 카를로스 고리토(38)는 각각 나폴리와 리우데자네이루 도시를 언급하며 “현지 사람이 화내는 톤과 똑같다”며 감탄했다. ‘오징어게임’은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 등 22개 언어로 더빙돼 전 세계에 공개됐다.
━
“‘오겜’ 더빙 싱크로율에 심혈…시즌 2도 동일한 성우 원해”
이날 행사 이후 중앙일보와 만난 캐서린 르타트 넷플릭스 더빙 총괄 디렉터와 존 데미타 프로덕션 매니저는 “더빙은 한국의 뛰어난 콘텐트가 전 세계로 나가는 데 문을 여는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오징어게임’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 톤·연령대·캐릭터 등 분석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성우를 섭외해 더빙 싱크로율(일치율)이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연내 공개 예정인 '오징어게임' 시즌 2 역시 시즌 1의 동일한 성우와 더빙 작업하는 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만난 캐서린 르타트 국제 더빙 총괄 디렉터(왼쪽)와 존 데미타 영어 프로덕션 매니저. 사진 넷플릭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38개 언어의 더빙 작업을 총괄하는 르타트 디렉터는 “더 많은 언어를 더빙으로 제공하는 것보다는 예능·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더빙 작업을 통해 콘텐트 접근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국 예능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톱10(비영어권) 1위를 차지한 ‘피지컬:100’을 언급하며 “100명의 참가자가 등장하고, 리얼리티 특성상 대화가 동시에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라 더빙 작업이 쉽지 않았다. 시청자의 60~70%가 더빙으로 작품을 보는 유럽·남미권을 위해 더빙판 제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평균 8개의 언어로 더빙이 제공되는 일반 예능 콘텐트와 달리 ‘피지컬:100’은 총 12개 언어로 더빙됐다. 지난 3월 공개한 시즌 2는 프로그램 인기에 힘입어 더빙 언어 수를 16개로 늘렸다.
인기 예능 '피지컬:100'은 100명의 참가자가 등장하는 만큼 더빙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고도화된 더빙 기술을 도입해 오리지널 예능 최초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더빙판을 제공했다. 사진 넷플릭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넷플릭스 콘텐트는 한국어를 영어로 전환한 뒤, 영어판을 바탕으로 다양한 언어로 더빙한다. 성인 대상은 17~18개, 키즈 콘텐트는 최대 35개 언어까지 작업한다. 성우 겸 배우 출신인 데미타 매니저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것이 한국 콘텐트의 강점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기생수: 더그레이’ 등 한국의 호러·스릴러를 사랑하는데, 삶 속의 익숙한 것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비틀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이어 “오리지널 K-콘텐트가 가진 본질과 뉘앙스가 더빙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작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한 문장에 많은 정보가 담겨있거나, 속담·언어유희와 같은 한국어 대사의 경우, 맥락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일례로 언어유희가 강점인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닭강정’은 11개 언어로 더빙됐는데, "겨울 지나 봄나물 씻을 때만큼 입맛이 돈다"는 대사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만큼 식욕이 돋는다"로 의역했다. 오빠·언니·누나와 같이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들은 한국 단어를 그대로 살렸고, ‘아이씨’ ‘어머’ 등 감탄사도 외국 성우의 목소리로 구현했다.
배우 안재홍이 연기한 시리즈 '닭강정' 속 인턴사원 고백중, '마스크걸' 속 주오남 캐릭터는 동일한 성우가 더빙 작업에 참여했다. 사진 넷플릭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성우 캐스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연애 예능 ‘솔로지옥’의 패널 홍진경·한해·이다희·규현의 목소리는 시즌이 달라져도 동일한 성우가 더빙을 진행하고, ‘마스크걸’·‘닭강정’의 안재홍, ‘지옥’·‘정이’·‘선산’의 김현주 등 넷플릭스 다작 배우들은 담당 성우가 있을 정도다.
르타트 디렉터는 “문화적·기술적·연기적으로 오리지널 콘텐트의 본질을 여러 언어로 전달하는 더빙은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 ‘제2의 제작’이라 말할 수 있다”며 “시청자가 작품을 볼 때 ‘더빙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어야 좋은 더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