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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기부용 시신, 돈벌이에 이용했더라도 처벌 못 한다?[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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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학서 헬스 트레이너·필라테스 강사 등 상대 유료 해부학 강의

법에 참관자 제한 규정 없어…'시신 정중 예우' 규정 어길시엔 과태료만

[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뉴스1

3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에 의대생 행동규범이 개시돼 있다. 2024.6.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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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범 김민수 기자 = "말 그대로 시체 장사 아니냐."

흔히 재해·재난 참사 유가족을 향한 정치적 막말로 사용됐던 '시체 장사' 혹은 '시체 팔이' 논란이 이번엔 정치권이 아닌 의료계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의대에서 비의료인을 대상으로 ‘카데바’(해부용 시신)를 이용한 유료 강의가 진행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가톨릭대 이어 연세대서도 '카데바 강의' 논란

논란은 가톨릭대 의과대학에서 시작됐습니다. 해당 대학에서 헬스 트레이너, 필라테스 강사 등 비의료인을 상대로 기증받은 카데바를 활용해 유료 해부학 강의를 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운동 지도자들을 상대로 의학 강의를 제공하는 H 업체는 가톨릭대 응용해부연구소를 통해 해부학 유료 강의를 열어온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가톨릭대 의대 소속 해부학 박사가 실습을 진행하면 수강자가 참관해 인체 구조를 직접 보는 방식입니다. 강의는 9시간 동안 진행되며 수강료는 60만 원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증받은 해부용 시신으로 유료 강의를 한 셈입니다.

특히 해당 업체는 강의 홍보 과정에서 '카데바 클래스는 무조건 프레시 카데바(Fresh Cadaver·화학적 처리를 하지 않은 해부용 시신)로 진행됩니다' 등의 문구를 사용하고, "이렇게 상태 좋은 카데바는 처음" 등 수강생 후기를 전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뒤이어 연세대 의대에서도 비슷한 강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사설 업체는 연세대 의대 해부교육센터에서 '스페셜 카데바 코스'라는 이름의 강의를 진행해 온 것으로 확인됐으며, 해당 강의는 박사후 과정 연구원(조교)이 진행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강연은 물리 치료사와 트레이너 등을 대상으로 5시간 30분 동안 진행, 수업료는 50만 원으로 홍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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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2024.5.22/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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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적으론 문제지만…"현행법으론 처벌 어렵다" 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증받은 시신을 장사에 이용했다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카데바가 부족하다며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교육 문제를 제기해 온 의료계 주장과 맞물려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법적인 책임을 놓고도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대 해부학 박사가 직접 해부를 시행했고 수강자는 참관만 해서 현시점에서 판단하기에는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일부 단체에서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시체해부법)' 위반 혐의로 가톨릭대 의대와 연계해 유료 강의를 제공한 업체를 고발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고발장을 제출한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에서 제기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해당 강의에서 비의료인인 수강생들이 직접 해부를 진행해 명백한 불법 행위를 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강의가 이뤄져 시신을 취급하는 데 있어 예우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행 시체해부법 제2조에 따르면 관련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 또는 의대의 해부학·병리학·법의학 전공 교수 혹은 이들의 지도를 받는 학생 등에 한해 시체를 해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또 같은 법 제17조는 "시체를 해부하거나 시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표본으로 보존하는 사람은 시체를 취급할 때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더라도 형사 처벌은 받지 않지만,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연세대 관계자는 "카데바에 칼을 대는 형태의 해부는 의료인이 하는 게 맞는데 참관은 법적인 규정이 없다"면서도 "다양한 가능성 열어 놓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비의료인인 수강생들이 직접 해부를 했다면 불법이겠지만 그럴 경우 흔적이 남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통한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형사 처벌 범죄는 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해놔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적용하는데 시체해부법상에서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표현이 추상적이다"며 "참관 제한 규정은 없기 때문에 이 부분도 문제 삼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해부의가 자격이 없다면 처벌이 가능하겠지만, 이 부분은 따져봐야 한다"며 "유가족들이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기부한 것은 아닐 거기 때문에 민사적 손해배상청구 여지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도의적인 문제에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의료계에서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세대와 가톨릭대 두 곳에서 해부학 실습 경험이 있는 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교수 직함이 아닌 자의 직접적인 해부 강의는 위법한데 경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라며 "비의료인을 대상으로 제3의 기업이 영리적 목적으로 카데바를 사용한 것은 분명 도의적 문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의대 교육용 카데바가 모자라는 것이 현실인데 원래 시신 기증자의 의도에 반하여 상업적으로 쓰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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