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 과거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 초고령 사회의 노화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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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대한민국 모든 시·도의 고령 인구 비중이 7%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뉴스가 나온 게 어느덧 13년 전의 일입니다. 이후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두 아실 겁니다. 통계를 토대로 추출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인구 전망이 암울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도 이제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습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고령 인구는 빠르게 늘어났는데, 극도로 낮아진 출산율은 반등은커녕 매년 세계적인 최저치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니, 결론은 뻔합니다. 대한민국은 다른 어떤 나라도 경험한 적 없는 "인구 소멸"을 향해 가장 빨리 달려가는 나라가 됐습니다. 1980년만 해도 중위연령 21.7세로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에 속하던 한국은 40여 년 만에 중위연령 45.6세(2023년 기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됐습니다. 안 좋은 일로 세상을 선도하는 건 내세울 만한 일이 못 되지만, 어쨌든 통계가 가리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소멸", "절벽"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도 처음에만 충격이었지 이제는 다들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기에 점점 더 심해지는 불평등 탓에 사는 동안의 건강과 웰빙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음까지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순서가 생긴다는 충격적인 트렌드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드러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불평등이 죽음보다도 삶(출산)의 순서를 정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양대 국제대학원의 전영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출산율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전체 합계출산율이 0.72, 서울의 경우 출산율이 0.5까지 붕괴했는데, 결혼한 부부의 출산율은 여전히 1.67로 전체 출산율보다 두 배 이상 높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간단합니다. (이제는 전형적인 옛날 용어가 된) “결혼 적령기”를 맞은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거나,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뜻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동거인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너무 힘겨운 도전이므로, 논의로 하겠습니다.)
이처럼 경제적인 계급, 계층에 따라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양상이 점점 더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건 현대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한국은 특히나 변화의 속도가 다른 나라와 견주기 어려울 만큼 빠릅니다. 산업화 시대에 젊은 세대가 열심히 일해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가족이란 제도를 통해 부모 세대를 어느 정도 봉양하던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 지금, 노인 빈곤이나 노인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됐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는 이미 나타났고, 그에 관해 더 늦기 전에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스브스프리미엄을 통해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정비하는 것 못지않게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조적인 문제보다도 개인이 나이 듦에 관해 태도를 바꾸고 마음가짐을 새로 해보는 데 관한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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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눈가 주름이 지혜와 우아함의 대가라니! - 우아하게 노화를 수용한다는 것
공감할 만한 문장이 곳곳에 등장하는 칼럼을 읽으면서도 앞서 소개한 구조적인 문제가 자꾸 떠올라 글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제가 이제는 젊은 세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노년기에 접어들려면 시간이 꽤 남은 중위연령에 가까운 나이라서 '나이 듦을 맞는 자세'를 열거한 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찰스 블로우가 남긴 제언을 같이 짚어보며,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의 노년 세대가 특히 신경 썼으면 하는 것들을 한 번 정리해 보려 합니다.
블로우는 자신에게 가족 내에서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는 것을 보며 나이 듦을 감지했다고 말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할 것 같던 부모님의 건강에 여기저기 이상 신호가 오는 날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걸 보면서, 또 자신의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보면서도 자연히 노화를 실감했습니다.
온 사회가 젊음을 찬양하는 사회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건 최소한 기운 빠지는, 어쩌면 서글픈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블로우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겠다고 다짐하죠.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장이 가장 인상적이고 재밌는 책이나 연극, 영화가 많으니 그런 자세로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만끽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얼 할지도 열거하는데, 하나같이 다들 누구나 노년이 되면 해봤으면 좋을 일입니다.
내 삶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꾸며갈지 태도에 관한 한 블로우의 글은 참고하고 본받을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오늘 여기서 제가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자신의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나 생각 말고 다른 사람, 특히 한 사회의 젊은 세대를 향한 시선에 관한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과거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미국에서 만나는 친구 중에는 한국 사회의 많은 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한국 사회가 이룩한 놀라운 성공 신화나 최근 자명해진 심각한 위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결국, 급속도의 경제 성장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급속한 경제 성장은 빛과 그림자를 모두 짙게 드리운 동전의 양면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경제 성장의 주역이 이제 대부분 은퇴한 전후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어렸을 땐 하루에 세 끼니를 온전히 챙겨 먹는 날은 운 좋은 날일만큼 굶주린 가난의 시절이 있었고, 젊은 날에는 다시 하라고 해도 절대 못할 만큼 열심히 일했으며, (그때는 아무도 몰라줬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우리 어머니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가사와 육아까지 해낸 게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가정 내의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은 지금도 여전히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아 문제입니다.) 많은 나라의 전후 세대가 그랬지만, 한국 사람들은 특히나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일한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 운이 좋게 기록적인 경제 성장이라는 성과를 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어렸을 땐 정말 가난했지" 또는 "젊었을 땐 정말 일밖에 모르고 열심히 살았지"라고 말할 때 베이비붐 세대의 표정에는 회한과 긍지가 교차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고생을 해보지 않아서 뭐가 귀한 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그 세대가 공통으로 해본 고생을 해본 적 없는 저로서는 그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기에 실제 경험이 그랬으리라 미뤄 짐작할 뿐입니다.
제가 부모님께 들은 1960, 70년대 한국 이야기를 제 또래 미국이나 유럽 친구들한테 해주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자기네 할머니나 심지어 증조할아버지 때 얘기를 듣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반응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20세기 후반 한국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고도의 압축 성장이었으니까요.
다만 젊은 세대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를 몰라준다고 아쉬워하는 기성세대가 정작 젊은 세대의 고충은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일 때는 허탈하고 아쉽습니다. 과거 눈부신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 여러 가지 규범들은 오늘날 더는 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도의 경제 성장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회가 돼 버린 한국에선 세대 차이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공식을 붙들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를 쓰니, "나라가 공짜로 돈을 뭉텅이로 쥐여주는데도 애를 안 낳으려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이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늘의 문제를 더는 통하지 않는 수십 년 전의 공식으로 풀어보려고 애를 쓰는 데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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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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