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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술, 이건 뭥미?"…대학가·시장·막걸리골목 "안 팔아요"[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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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한 식당에서 판매용 소주를 잔에 따르는 모습.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병이 아닌 낱잔으로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주류면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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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잔술 판매 허용



"잔술 파는 건 옛날 얘기지."(수제빗집)

"청년몰 바에선 칵테일 등을 한 잔씩 팔지만, 맥주·소주를 잔으로 파는 곳은 없어요."(커피숍)

"모주는 시음만 할 수 있어요."(건어물전)

지난 10일 낮 전북 전주시 전동 남부시장. 정오부터 1시간가량 돌아다녔지만, 잔술을 파는 가게는 찾을 수 없었다. '서민이 애용하는 전통시장에 가면 잔으로 술을 파는 가게가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지만, 실제 상황은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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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주 남부시장 한 골목. 일부 가게에서 지역 전통 모주·막걸리 등을 팔고 있지만, 잔술을 따로 팔진 않았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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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탑골공원 외 잔술집 드물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병이 아닌 낱잔으로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주류면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기존엔 소주·막걸리 등을 잔에 나눠 담에 팔았다가 적발되면 주류 판매 면허가 취소될 수 있었으나 '주류를 술잔 등 빈 용기에 나눠 담아 판매하는 경우'를 주류 판매업 취소 예외 사유로 명시했다. 이를 두고 "1960~1970년대 성행하던 잔술 문화가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가 잔술 판매를 합법화한 지 보름가량 지났다. 그러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부자촌' 등 극소수 업소를 제외하면 잔술을 파는 곳은 드문 것으로 파악됐다. '부자촌'은 한 잔 가득 따른 막걸리나 소주 한 컵을 단무지·강냉이·전 등 주전부리와 함께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잔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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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부터 모든 주종의 잔술 판매가 가능해진 가운데 이날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 한 잔술집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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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 한 잔술집. 막걸리 한 사발 또는 소주 한 컵이 1000원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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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요즘 누가 잔술 마시나"…위생 논란도



이날 찾은 남부시장 인근 풍남문 광장엔 노인 일부가 벤치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그러나 "소주는 편의점에서 사 왔다"고 했다. 홍모(70·전주시 전동)씨는 "1980년대 중반까지 포장마차에서 잔술을 마셨다. 소주 한 잔에 300원이었는데 담배도 '까치(개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며 "요즘 누가 잔술을 마시냐. 마트에서 1400원 주고 소주 한 병을 사서 먹다가 못 마시면 버리면 되지. 어차피 안주도 먹어야 하는데 잔술이 돈이 더 든다"고 했다.

시장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권모(70대·여)씨는 "금·토요일 열리는 야시장에선 팔지 몰라도 일반 가게에선 잔술을 안 판다"며 "잔에 새로 따른 술인지, 누가 마시다 남긴 술인지 어떻게 아나. 위생적이지 않고 관리도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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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9시쯤 전북자치도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구정문 인근 술집 골목. 잔술을 파는 가게는 없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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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인근 한 술집에서 대학생 등이 술을 마시고 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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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자리만 차지…손해"



대학가엔 잔술 문화가 상륙하기는커녕 현실과 동떨어진 옛날이야기처럼 여기는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9시쯤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인근을 누볐지만, 잔술을 파는 가게는 한 군데도 없었다. 주류업계에선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32)씨는 "잔술을 파는 곳은 아직 없다. '잔술을 파냐'고 물어보는 손님도 없다"며 "업주 처지에선 손님이 한 잔 가지고 자리만 차지하면 회전율이 떨어져 외려 손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잔술을 팔려면 메뉴판뿐 아니라 포스기(판매 정보 관리 기기)도 바꿔야 하는 등 번거롭다. 그럴 바에야 서비스에 더 신경을 쓰거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게 더 이익"이라며 "수요자도, 공급자도 시큰둥한데 왜 잔술 판매를 허용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주변 사장님들에게 물어봐도 팔 계획이 없다. 솔직히 '이건 뭥미(뭐냐)'라는 분위기"라고 했다.

와인바 대표인 김모(40대)씨는 "가령 데킬라 한 잔이 보통 6000원인데 손등에 뿌린 소금과 함께 라임을 먹는다"며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 통칭)에게 잔술을 팔려면 적어도 이렇게 맛있는 술 한 잔이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 음주 문화를 모르는 대학생들은 "잔술이 뭐냐"고 반문했다. 전북대 농대 2학년 황모(21)씨는 "보통 친구 두세 명이 안주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다"며 "술 한잔을 싸게 팔더라도 굳이 마시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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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10시쯤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 막걸릿집도 "잔술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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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위생 점검…재사용 단속"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도 잔술을 파는 곳이 없었다. 막걸릿집 대표 김모(50)씨는 "기본 안주만 최소 6~7개씩 나가는 게 막걸리 문화인데 잔술은 단가가 너무 낮아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반찬 수를 줄인 기본 상에 1만9000원~2만원을 받는 식으로 준비하는 업소는 있지만, 현재까지 잔술 판매를 검토하는 곳은 없다"고 했다. 그는 "발효주인 막걸리는 한 번 뚜껑을 따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부 막걸릿집에선 몇 년 전부터 주전자가 아닌 페트병 위주로 판다"고 했다.

지자체는 안전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시행 초기라 잔술을 파는 업소가 정확히 몇 개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연간 20~30회 위생 단속을 나가는데 앞으로 두세 달은 시·군과 함께 집중적으로 지도 점검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일반음식점·유흥주점·단란주점 등 주류 판매가 가능한 도내 업소는 약 2만7400개로, 술 종류와 상관없이 잔술을 팔 수 있다는 게 전북자치도 설명이다.

김정 도 건강증진과장은 "소비자가 마실 만큼만 술을 마시고 계산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잔술 판매 제도가 탄생했으니 위생 관리만 철저하다면 업소가 자율적으로 팔 수 있다"며 "다만 판매한 조리 음식을 재사용하면 식품위생법에 위배돼 처벌받는 것처럼 이미 손님 탁자에 나간 술을 거둬 재판매하는 것도 단속 대상"이라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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