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에 시달리던 지아(금새록)는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시골 청년 병재(류경수)를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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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무리한 지시에도 웃는 얼굴로 “네”라고 답하는 게 사회생활의 ‘치트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실과 친절로 무장한 채 달려온 서른살 직장인 오지아(금새록)를 기다린 것은 청천벽력 같은 암 진단. 거기에 절친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자 그는 무너지고 만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카브리올레’는 번아웃(Burnout)에 직면한 ‘K직장인’의 이야기다. 도저히 이렇게는 버틸 수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온 날, 주인공 지아는 전 재산을 털어 오픈카 카브리올레를 산다. 그리고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찾아가 호기롭게 제안한다. “일주일 동안 나랑 여행해주면 이 차, 너 줄게.”
뻔한 로드무비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꽤나 독특하다. 생동감 넘치는 화면 속에 엉뚱한 유머가 툭툭 터져 나온다.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웹툰 ‘이태원 클라쓰’를 그린 원작자이자, 2020년 이 작품이 JTBC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각본까지 직접 쓴 조광진(37)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다.
조광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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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언론시사회가 열린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만난 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건 오랜 꿈이었다. 이번 스토리는 웹툰이나 드라마보다는 영화라는 장르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감독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번아웃’이란 소재를 택한 건 개인적인 경험이 컸다. “스무살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만화를 그리느라 쉴 틈 없이 달려왔어요. 원래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평소 같으면 순식간에 해내던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보이더라고요. 직장 생활을 하는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비슷한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자기 일에 사명감이 있든 없든, 지치는 순간은 찾아오더라고요.”
고급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낯선 시골길에서 한가한 청춘 병재(류경수)를 만난다. 그동안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느릿하고 빈틈 많은 삶과 만나면서 지아의 마음에도 차츰 여유가 찾아온다는 결말을 예상할 때쯤, 영화는 예상외 반전으로 펀치를 날린다. 조 감독은 뜻밖의 전개에 관객들의 반응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결심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드림카인 ‘카브리올레’를 타고 전국 일주를 떠나는 지아.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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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쓰’가 겁 없이 도전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시청자의 마음을 달궜다면, 이번엔 경쟁이 전부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지친 마음을 정조준했다. 늘 웃으면서 “힘들지 않아”라고 말하던 지아가 자신 안의 뒤틀린 마음을 거침없이 내뱉을 때 보는 이에게도 마음이 후련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하던 주인공이 오롯이 ‘나’를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는 이들도 느꼈으면 합니다.”
그는 자신이 청춘들의 이야기를 계속 그리는 이유에 대해 “그 시절의 경험이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웹툰 작가로 명성을 얻기 전 호프집 알바를 비롯해 공사 현장, 물류 센터 등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신용불량자가 돼 빚 독촉에 시달리던 시기 등을 거치며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기질이 길러졌다. 그는 “최근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면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만화 『슬램덩크』에 전율을 느낀 후 만화가를 꿈꾸기 시작했다는 조 감독은 드라마와 영화 작업을 통해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의 매력에도 푹 빠지게 됐다. “웹툰은 거의 혼자 모든 것을 해내는 1인 작업인 반면, 영화는 여러 사람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소통에 서툰 편이라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다른 이들이 나의 부족함을 메워주면서 더 나은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웹툰 연재와 함께 드라마 각본 작업과 영화 제작을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그는 “‘카브리올레’를 만드는 동안은 흥행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는데, 개봉을 앞두니 함께 참여한 분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욕심이 생긴다”며 “다음 영화로는 초절정 엘리트와 야수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범죄물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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