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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임의진의 시골편지]조용한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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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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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이나 록밴드 음악을 듣는 일 빼곤 대체로 조용하게 사는 편. 뾰족하게 굴며 스포츠카를 방방 대는 이웃이 있질 않나 저 건넛집엔 누가 드럼을 배우는지 밤낮 두들겨 팬다. 악기 종류가 색소폰에서 바뀐 모양, ‘삑사리’가 장난 아니다. 하루 몇 차례 ‘산불조심’ 안내방송 차량도 요란하다. 산동네 살면 숯불만 피워도 방화범 취급을 받아.

동물 중에 보면 인간이 가장 시끄럽게 사는 거 같다.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본 코끼리를 기억하는데, 위엄 있고 묵직한 걸음. 거대한 몸집과 달리 눈은 작고 순하게 생겼다. 가까운 동물원에도 코끼리가 살긴 사는데, 타잔을 불러서라도 탈출시키고 싶어. 몸집이 큰 만큼 철창은 얼마나 비좁게 느껴질까.

성공회 신부이자 작가 애덤 포드의 책 <침묵의 기쁨>에도 코끼리 얘기가 나온다. “작지만 요란한 물떼새와 다르게 코끼리는 예상 밖으로 너무 조용하단 사실에 놀랐다. 꺼져가는 깜부기불 옆에 앉아 있을 때였다. 덤불 밖으로 무엇인가 나오는 걸 느꼈고 한 떼의 코끼리들이 색바랜 풀밭 길을 따라 조용히 지나가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어른 코끼리들은 몸집이 집채만큼 컸고, 옆에 붙어 뛰어가는 새끼들은 어른 코끼리의 축소판이었다.”

못생긴 ‘무쪽 다리’지만 큰 몸을 지탱하며 걷는 코끼리, 개미라도 밟힐까 사뿐사뿐 조심히 걷는다. 자연의 멜로디 방귀 소리도 당신 것보다 싱거워라.

나라가 마냥 시끄럽고 소음들로 우렁차다. 높은 분들 행차엔 무책임한 말 잔치를 비롯 구설수 공해. 어딜 가나 좀 조용히 다녔으면 좋겠어. 또 온갖 이해의 충돌이 빚어낸 확성기 소리는 도심에 꽉 차 있다. 적개심과 울분으로 가득한 인생들의 소락때기(소리), 그 앞을 스쳐 지나가는 무심한 행렬들.

인간 사회가 과연 코끼리보다 무엇이 우월하단 말인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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