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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불소추가 재판 면제는 아니다” vs “대통령 법정 안세우는게 법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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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대통령 되면 재판은? ‘헌법 84조’ 놓고 법학자들 해석 갈려

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셜미디어에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재판이 중단되는 걸까”라는 글을 올리며 ‘헌법 84조’를 언급했다. 이화영씨 유죄 판결로 ‘사법 리스크’가 더 커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형사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는 불소추 특권 대상이 되는지 물음을 던진 것이다. ‘헌법 84조’를 놓고 법학계와 법조계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법률 전문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들어봤다.

◇ “불소추가 재판 면제는 아니다”

조선일보

왼쪽부터 황도수 교수, 신평 전 교수, 김상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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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대통령이 될 경우에도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조인과 법학자들은 대통령의 불소추(不訴追)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에서 ‘소추’는 검사의 기소 단계까지만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도 취임 전에 기소된 재판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평 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에 나오는 ‘소추’는 기소와 사실상 같은 단어”라고 했다. 신 전 교수는 “이 헌법 조항은 현직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범죄를 기소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되기 전 기소된 재판은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대통령 재임 중 집행유예 이상의 유죄가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상실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다만 신 전 교수는 “대통령의 재임 중 기존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해석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법원이 재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 선택으로 대통령이 됐는데 원칙대로 재판해 유죄를 선고할 판사나 재판관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 명예교수는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재판은 그 신분과는 별개로 계속돼야 한다”며 “대통령이기 때문에 재판이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사법부 관점에서 보면 ‘적법 절차의 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현직 대통령도 수사 대상은 될 수 있다. 수사로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기소를 못 한다는 게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지, 대통령이 되기 전 재판까지 멈추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는 사법기관인 법원과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직무 중 일탈을 문제 삼아, 임기 수행을 막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이 조항을 확대 해석해서 대통령 재임 전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재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통령 특권을 과도하게 넓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헌법 84조 논란’이 불거진 배경으로 법원의 ‘재판 지연’을 지적했다. 황 교수는 “다음 대선이 2년 넘게 남았는데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법원이 재판을 너무 길게 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2년 9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총 6개 사건, 8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건도 1심 판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대통령 법정 안세우는게 法 취지”

조선일보

왼쪽부터 김선택 교수, 노희범 변호사, 차진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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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 대해 “헌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했기 때문에 최대한 임기를 보장해야 하고,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해 당선 전 기소된 재판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의 취지를 보면, 형사 소추는 결국 형사 재판을 개시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며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 재판을 못 하게 하는 것이므로, 곧 진행 중인 재판도 멈춰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대표가 범죄자로 재판을 받으면서 어떻게 국가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느냐”며 “국내외적 신뢰 추락은 물론 국정 운영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재판도 중단된다고 해석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차 교수는 “헌법학자로서 현재 상황(헌법 84조 논란)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차 교수는 “이 조항은 재판을 받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되는 상황 자체를 전제하지 않고 만든 것 같다”며 “법치주의 관점에서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며, 법치주의의 위기”라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 84조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형사 재판으로 리더십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형사 소추의 범위에 재판이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선 전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임기 중엔 그 재판을 ‘일시 정지’하고 국정 운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만 임기 중 ‘재판을 안 받는 것’뿐이지, 임기 후엔 다시 원칙대로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는 과거 마그나카르타 등 입헌군주제 시절부터 있었던 조항으로, 군주와 군주 가족의 신병은 확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군주정의 유산”이라며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직무 수행에 방해를 받지 않게끔 하는 차원의 조항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현재 1심에서 30여 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이 났는데, 재판 확정 전 대선을 치르게 될 예정이어서 이런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면서 “이재명 대표도, 국민들이 세세한 범죄 사실을 다 아는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면 재판을 멈춰 직무 수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대선 전에 확정 판결이 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헌법 84조

대통령의 임기 중 불소추(不訴追) 특권을 규정한 헌법 조항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곤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신분과 권위를 유지하고 국가원수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소추(訴追)

형사 사건에서 검사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해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고위 공무원에 대해 탄핵안을 결의해 헌법재판소에 파면을 구하는 것도 소추라고 한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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