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앞두고 추모객 이어져
현충원 경찰관묘역 840여위 안장
매년 10여명 순직... 질병이 최다
현충원 경찰관묘역 840여위 안장
매년 10여명 순직... 질병이 최다
현충일을 앞둔 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박진숙 씨(77)는 자신이 경찰임을 늘 자랑스럽게 말했던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었다. 박씨의 아버지는 5살이 되던 해 충남 대둔산에서 북한군과의 교전 중 사망했다. 당시 박 씨의 아버지는 조치원 파출소장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품에서 자랐지만, 박씨는 아버지를 최고의 스승으로 꼽는다. 박씨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멋진 분이었다”며 “나라를 위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되뇌며 살았다”고 말했다.
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박진숙 씨(77)가 아버지의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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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충일을 앞두고 조국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가족에게 인사를 건네는 참배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국가원수묘역, 독립유공자묘역과 충혼당, 위패봉안관 등 사이에 경찰관 묘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현충문에서 우측으로 가면 나오는 경찰관 묘역에는 6·25전쟁 전후 순직한 경찰관 840여위가 모셔져 있다. 조영희 현충원 해설사는 “경찰 중에 국가에 대한 공헌이 특히 높은 분들을 현충원에 모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경찰충혼탑. 탑 전면에 이은상 선생의 헌시가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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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충혼탑에 새겨져 있는 이은상 선생의 시 구절에 방문객들의 표정도 숙연해졌다. 충혼탑에는 “육신은 풀 끝의 이슬처럼 잠깐 왔다 갔을지라도 뜻과 이름 길이 여기 살아 계시리. 강산과 역사와 함께 길이 사시리”라고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송모 씨(73)는 6·25전쟁 중인 1950년 당시 순경이었던 아버지를 여의었다. 송씨는 어머니 뱃속에 있던 때였다. “아빠 잡아먹은 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는 아버지가 많이 그리워 매년 현충일과 기일에 묘소를 찾아 참배한다고 했다. 이날 남편과 함께 기도문을 낭독한 송씨는 “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실 수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된다”며 “내가 죽은 뒤에도 이곳은 남아있을 것이고 6월 6일이면 언제나 사람들이 아버지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제69회 현충일을 앞두고 유족이 국립서울현충원 경찰관묘역을 찾아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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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경찰 순직자는 매년 10여명에 이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4명, 2020년 17명, 2021년 18명, 2022년 17명의 경찰관이 순직했다.
최근 5년 동안 순직한 경찰관 숫자가 71명에 이르는데 질병으로 순직한 경찰관이 51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통사고(6명), 안전사고(4명) 순이었다. 서울경찰청에서만 지난 5년간 13명의 경찰관이 순직했다. 이날 현충원을 찾은 이모 양(10)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께 감사함을 느낀다”며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더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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