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구글 명함 없으면 내가 사라진다고요···알 깨기 딱 좋을 때예요 [정혜진기자의 사람한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구글 디렉터에서 트레이더조 아르바이트생으로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펴낸

로이스 김 인터뷰 "은퇴 예행 연습 필요하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글은 더 이상 당신에게 제공할 일자리가 없습니다(We no longer have a job for you at Google)’

지난 해 1월 20일 금요일 아침 개인 이메일로 온 메일 한 통에는 이 같이 쓰여 있었다. 16년을 몸 담았던 회사가 보내는 ‘건조한’ 이별 통보였다. 구글 코리아에서 전무로 일한 뒤 미국 구글 본사에서 새롭게 글로벌 홍보 팀을 꾸렸던 정김경숙(로이스 김) 디렉터는 그렇게 ‘정리 해고(레이오프)’ 대상이 됐다. 회사 메일함에서 답을 기다리던 수백 통의 메일도, 구글 캘린더에 15분 단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미팅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외부 자극이 증발한 가운데 마음에서는 파도가 밀려 왔다. ‘왜 나였을까’ 분노가 일었다가 좌절이 왔다. 사흘째 되는 날 밤 짓누르던 감정에서 빠져나와 무작정 그간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망설임 없이 적어 내려간 첫 리스트에는 ‘트레이더 조(Trader Joe's)의 크루 되기’가 있었다. 항상 궁금했던 게 있었다. ‘왜 트레이더 조 직원들은 그렇게 친절할까. 트레이더 조 계산대에만 가면 월마트와는 달리 나도 모르게 이야기들을 풀게 될까’ 트레이더 조는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로 사랑을 받는 미국의 로컬 유통 체인으로, 우리나라의 냉동 김밥과 주먹밥 등이 ‘완판’ 행렬을 일으키며 화제가 된 곳이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글 본사 디렉터 이력이 있잖아요. 이력서가 너무 화려하면 장난으로 낸다고 생각할까봐. 종이로 프린트해서 직접 매장에 방문했어요. ‘트레이더 조 제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질문부터 시작해 까다로운 두 차례의 인터뷰를 통과하고 크루가 됐어요.”

김 전 구글 디렉터는 최근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를 출간한 후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트레이더 조에서 명찰과 유니폼을 받는 순간 ‘육체노동자, 시간제 노동자가 되는구나’를 실감했다”며 “정문 앞에서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들어가기로 한 순간이 스스로 구글 디렉터였다는 체면에서 벗어나 ‘알을 깬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일단 해보고 나면 그 다음은 쉬워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용기 내 큰 소리로 ‘안녕 모두들’하고 인사했어요. 다들 깜짝 놀라서 쳐다봤죠.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됐어요.” 이후 그렇게 승차 호출 서비스 앱 ‘리프트’의 라이더,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로 N잡러이자 월급 대신 주급을 받는 삶이 시작됐다. 실리콘밸리의 간판 테크 회사인 구글의 디렉터로 살아오던 그가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눈을 돌리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리프트도 시작이 어려워서 계속 미루고 있었어요. 제 아이한테도 늘 미루지 말고 하라고 했는데 제가 다른 사람을 태우기가 두려워서 미루고 있었던 거죠. 어느 날 큰 맘 먹고 리프트 운전자용 앱의 ‘접속하기(Go online)’를 누르니까 그 다음 단계 없이 바로 매칭이 됐어요. 겁이 났지만 갈 수밖에 없었어요.”

기자는 8년 전 테크 업계를 취재하면서 처음 저자와 인연을 맺었고 2년 전 이맘 때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구글 마운틴뷰 캠퍼스에서 저자의 첫 책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출간을 기념해 인터뷰를 했었다. 구글 디렉터의 후광을 내려놓기까지 그가 어떤 고생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00회의 만남들···버블을 깨다




리프트는 그의 주변 세계를 넓혔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버블’이라고 표현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지만 그의 주변에는 각국에서 온 비슷한 테크 업계 종사자들이 넘쳐났고 ‘좁은 버블’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버블 안에 있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된 기회였어요. 나중에는 택시만큼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도 드물더라고요.” 대입을 앞둔 학생이 부모의 기대 때문에 차에서 실컷 울고 가기도 하고 실명을 겪은 분이 인생의 남은 밝은 면을 이야기 해줘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 생활은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 ‘카페인 삼분의 이, 디카페인 삼분의 일’ 같은 주문부터 ‘그란데 사이즈 라떼를 벤티 사이즈 컵에 담아달라는 요구도 있는가 하면 휘핑 크림을 컵 바닥에 깔아달라는 창의적인 주문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바리스타들의 태도였다. 스타벅스의 슬로건인 ‘당신의 커피를 만드세요(Make your own coffee)’에 대한 존중이 배어있었다. 고객이 단 것을 싫어하면 바닐라 시럽을 줄일 것인지, 모카 시럽을 줄일 것인지도 고민하고 고려해준다는 것. “오히려 간단한 주문을 지루해하고 고객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주문을 하면 도전적인 과제라고 느껴서 재밌어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고객이 라떼와 카푸치노 사이에서 고민하면 ‘카푸치노를 더 촉촉하게 만들어줄게’ 제안을 하는 데 이르렀어요.”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게 순탄했던 건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게 육체를 써야만 가능한 노동이라는 점이었다. 뼛속까지 마케터, 홍보인으로 살아왔던 그는 ‘월마트에서는 계산대에서 아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데 트레이더 조에서는 왜 모두들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까’ 오랫동안 궁금했다. 하지만 조직의 강점을 깨닫기도 전에 이곳은 ‘몸으로 일하는 곳’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맨 몸으로 키 높이보다 높게 쌓아 올려진 200kg에 달하는 빵 상자를 장비로 들어 올리기 위해 10분 넘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어깨와 이마에 멍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로운 근육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달라진 건 육체노동자로도 살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다.
그는 “오랫동안 지식노동자로 살아오다 보니 ‘나한테서 노트북을 빼앗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다”며 “‘50대에도 몸 하나로도 먹고 살 만큼도 벌 수 있고 저축도 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6개월 만에 승진도 했다.

명함 사라지는 순간 음지로··· 또 다른 유리천장 깨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실리콘밸리 아르바이트생 경험을 일종의 ‘은퇴 예행 연습 시간’으로 정의했다. 그는 “30년 간 일하면서 통신(모토로라), 제약(일라이릴리), 인터넷(구글)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산업보다 다양한 산업군을 경험할 수 있었다”며 “누군가는 경험삼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한계를 넓히려는 치열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어느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로이스님은 레이오프 사실을 용기 내 말해줌으로써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어떤 금기, 유리천장을 깼다고요.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물가가 살인적이기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은 어느 정도 가능할까. 그는 시급이 21달러 50센트인 트레이더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스타벅스에서는 주당 20시간 남짓을 일한다. 여기에 틈틈이 리프트 운전을 하면서 주당 400불 남짓을 받는다. 주당 70시간 가량 일하면서 받는 수입은 월 4000달러 수준이다. 물가가 살인적인 실리콘밸리인 만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이들도 많다. 그는 “많은 동료들이 동시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일을 병행하고 있다. 치위생사를 하면서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거나 트레이더 조 크루가 주말에는 웨딩 사진 촬영 등을 같이 한다”며 “두 아이를 키우는 가족의 경우 둘 중의 한 명은 60시간 이상씩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얼마를 벌면 인색해지지 않을지, 어떤 루틴이 필요한 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무작정 잠수를 타기보다는 네트워킹을 이어가고 자신만의 루틴을 확보하며 세상과 접점을 유지할 것을 추천했다. 가까운 사람이 이 같은 일을 겪게 될 때는 “너무 조심스럽게 대하지는 말되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여유를 줄 것”을 당부했다. 이제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설 각오도 됐다. 그는 “‘Open to Work(구직에 열려 있음)’ 상태라는 걸 널리 알려주세요.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도 용기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될 수도 있어요.”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