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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수화상병에 갈아엎어지는 배 농가
"30년 가까이 키운 배나무들을 모두 묻어버리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자식 잃은 것과 똑같습니다."
지난달 31일 강원 홍천군에서 5천㎡ 규모로 배 농장을 하는 이 모(63) 씨는 28년간 길러온 나무 200여 그루가 모두 뽑혀 땅에 묻히자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이 씨는 지난 23일 농장에서 10그루 넘는 나무의 잎과 가지가 검게 마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간이 진단에서 과수화상병 양성 판정이 내려졌고 이튿날인 24일 오후 정밀 진단 결과도 최종 양성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씨의 과수원은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과수화상병은 주로 사과, 배 등 장미과 식물에서 발생하는 세균 병으로 이 병에 걸리면 식물의 잎, 꽃, 가지, 줄기, 과일 등이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며 마르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치료약제가 없어 농가에 5% 이상 발생하면 해당 과수원 전체를 매몰 처리해야 하기에 '과수 구제역'으로도 불립니다.
이 씨 농가도 200그루 중 12그루가 양성으로 확인돼 과원 전체가 폐쇄 조치 됐습니다.
도 농정 당국은 확진 판정 이후 1주일가량 준비작업을 거쳐 이날 본격적인 매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대형 굴착기 2대가 뿌리째 뽑힌 나무를 한데 모아 구덩이에 묻었고 방역 관계자들은 그 위로 석회 가루를 뿌렸습니다.
굴착기들이 여러 번 움직이자 과원은 금세 폐허로 변했습니다.
이 씨는 올해 과일값이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최근 어린 열매 솎아주기 작업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곧 내리쬘 여름 뙤약볕 아래 잘 자란 배를 수확할 기대에 부풀었지만, 과수화상병이 희망을 모두 가로챘습니다.
이 씨는 "작년에는 이른 봄에 냉해를 입어 소득을 거의 올리지 못했었고 올해는 5천만 원 이상 거둘 것이라 기대했었다"며 "이제 어떻게 보상받고 앞으로 뭘 심어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수화상병은 지난 13일부터 27일까지 충북, 충남, 경기, 강원, 전북의 13개 시군 사과와 배 농가 51곳에서 발생해 30㏊의 과수원에서 피해가 났습니다.
농촌진흥청은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고자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높이고 차단 방역에 들어갔습니다.
강원농업기술원도 올해 49명 규모의 방제단을 운영하고 장비 및 약제 방제를 위해 20여 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또 과수원 1천620ha에 사전방제를 3차례 추진했고 농촌진흥청과 합동으로 감염위험도 예측 정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택근 기술보급과장은 "과수화상병 차단을 위해 도·시군 대책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며 "농작업 중 잎·가지 마름 등 이상 증상이 보이면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나 병해충 신고 대표전화(☎ 1833-8572)로 꼭 연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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