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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40·50대만 뽑아요"…'베테랑 신참' 시대 열렸다 [중장년층 뽑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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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전문가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펫시터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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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 4층. 생활환경 위생 전문 기업 세스코가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그런데 20대를 대상으로 한 일반 채용설명회와 분위기가 달랐다. 세스코가 채용 대상 연령을 만 40~59세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날 채용설명회장은 40~50대 남녀 100여명이 몰려 분위기를 달궜다. 서울시 산하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주로 중장년층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거나 일자리 모델 등을 발굴한다.

인터넷에서 채용공고를 보고 왔다는 박 모(53) 씨는 “30대까지만 해도 서류 접수조차 안 받아주는 곳이 많았는데, 이곳은 40~50대만 채용한다고 해서 반가웠다”고 말했다.

안지환 세스코홈케어수도권동부지역단장은 “가정을 찾아가 해충 방제 등 위생 토탈 케어를 하는 직무(홈프로케어) 특성상 이번 채용설명회는 주로 40~50대를 대상으로 진행했다”며 “20~30대보다 업무 숙련도가 향상돼도 이직할 가능성이 적은 중장년층을 쓰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이날 채용설명회를 계기로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사람은 3일 기준 3명이며, 2명은 면접 중이다. 세스코 측은 “면접 중인 2명도 취업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세스코에 채용이 확정된 이모 (57) 씨는 “(나이 때문에) 구직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40~50대 대상 채용 설명회가 마련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라며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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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열린 세스코 채용설명회.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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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부작용…‘키’로 떠오른 중장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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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산가능인구 전망. 그래픽=김주원 기자


채용 시장에서 중장년층이 대접받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영향 등으로 청년층이 줄어드는 반면, 노동인구가 대거 은퇴하는 시기가 맞물리면서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해 만 50~60세인 2차 베이비붐 세대(1964년~1974년생)가 일제히 은퇴하고 있다. 반면 2025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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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 년 직업별 추가 필요 인력.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달라지는 인구 구조 변화는 의료·노동·연금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내놓은 ‘2024 인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657만명인 한국 생산가능인구(15~64세 이하)는 2044년 2717만명으로 줄어든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약 20년 만에 1000만명 가까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반대로 비생산연령에 진입하는 인구는 급격히 늘어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 동안 65세 이상 비생산 연령대에 진입하는 인구는 858만명에 달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 국가신용등급 평가 보고서는 “한국 노년부양비(15∼64세 생산가능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중)가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라며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경제 성장 엔진이 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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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년 산업별 추가 필요 인력.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이에 중장년층이 주목받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장년층(40세~64세) 인구는 2020만4000여명으로 한국 전체인구의 40.5%를 차지했다.

최윤식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장은 “중장년층은 업무적 숙련도나 경험·지혜 측면에서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며 “4차 산업혁명에 이어 바이오·나노기술이 5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면 ‘기술 폭풍’ 시대를 맞이하는데,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중장년층을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저출산 고령화 문제나 미래 산업 구조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中企 76% “4050 채용 의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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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직장인이 일자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그래픽=김주원 기자


채용 시장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중장년 맞춤형 일자리 서비스 포털사이트 올워크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가운데 76.5%는 중장년층을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MS워드·엑셀 등 컴퓨터 활용이 가능하고 빅데이터 분석이나 소셜 미디어 마케팅이 가능한 인재라면 나이가 많아도 채용하겠다고 한다.

실제로 업무 특성을 고려해 중장년층을 적소에 채용해 효과를 거둔 기업도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전체 직원 중 50대 이상 고용비율이 약 27%다. 이 회사는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들이 원하고 회사도 필요로 한다면 촉탁직으로 재고용한다. 50대 이상 직원 중 현장 근무 인원 비율은 67%에 달한다.

SK에코플랜트 인사팀 관계자는 “우수한 중장년층을 고용하면서 국내·외 건설 프로젝트 완성도를 높였다”며 “중장년층은 현장 노하우 전수를 잘하고 소통에도 능하다”고 말했다.

KT도 전체 직원의 60%가 50대 이상이다. 매년 1000여명가량 한꺼번에 퇴직하면 업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 KT는 2018년 시니어 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이 후배에게 전문지식을 전수하면서 KT는 업무 공백을 줄이고 중장년층 일자리도 창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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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한국맥도날드가 개최한 중장년층 채용설명회. [사진 서울시50플러스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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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엘리베이터는 정년 후 재고용 정책을 도입한 게 10년 전이다. 2014년 장혜준미래인재아카데미 전문교수를 채용한 이래 지금까지 촉탁별정·전문교수로 재임용한 직원 수가 53명이다. 2020년 설립한 자회사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가 재임용한 정년자(7명)까지 포함하면 60명을 재고용했다. 또 2021년부터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직 진로 설계 교육을 진행 중이다. 50대 이상 직원(600명)이 현대엘리베이터 전체인원(2803명)의 21.4%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중장년층 채용 효과를 확인한 기업은 채용 규모를 늘리기도 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 따르면, 중장년층을 채용한 기업의 68%는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성실성·조직충성도 등 인성·품성(37.0%) 측면에서 뛰어나고, 업무성과·전문지식 측면(19.2%)에서도 우수했다고 답했다. 조직융화력(18.6%)이나 이직횟수(6.8%)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평가가 나왔다.

김지인 세스코 채용팀장은 “특정 업무엔 오히려 젊은 신입사원보다 중장년층이 근무 성과가 우수한 것을 확인했다”며 “30년 넘게 홈케어프로 업무를 담당하다가 정년(60세)이 됐지만, 성과가 탁월해 촉탁고용 형태로 회사가 계속 근무를 요청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장년층 채용이 아직 일반적인 추세는 아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중장년층 채용을 보다 확산하려면 중장년층을 내보내는 것이 왜 손해이고, 채용이 왜 이득인지 민간 기업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희철·이수기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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