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실손보험의 '풍선효과' (下)
━
"실손보험 차라리 안 팔고 싶어"…과잉진료에 쌓이는 적자
━
실손의료보험 사업실적/그래픽=조수아 |
관리 사각지대에서 비급여 과잉 진료의 풍선 효과가 나타나면서 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 손익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적자가 쌓이면서 실손보험을 팔지 않는 보험사도 쌓이고 있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생명보험·손해보험사의 지난해 실손보험 손익은 1조9738억원 적자로 나타났다. 2022년 1조5301억원 손실보다 적자 규모가 4437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실손보험료수익이 13조2000억원에서 14조4000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이보다 가입자가 받아간 보험금(발생손해액)이 더 가파르게 늘면서 보험사의 적자 폭이 확대됐다.
실손보험 손익이 악화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항목을 옮겨가며 비급여 진료가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백내장 수술은 가장 대표적인 비급여 항목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앞서 2022년 대법원이 '입원 치료가 불필요한 경우 백내장 보험금을 통원 보장 한도에서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서 백내장 과잉 진료는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도수치료 등 기존 비급여 항목과 발달지연, 줄기세포 무릎 주사 등 완전히 새로운 비급여 항목에서 보험금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백내장이 막히자 다른 비급여 항목으로 풍선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비급여 항목은 급여 항목과 달리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풍선 효과가 끊이지 않는다. 급여 의료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해야 해서 보건당국이 진료 대상, 진료량, 진료수가를 모두 통제한다. 반면 실손보험이 보장하는 비급여 의료비는 의료기관이 가격을 임의로 정하고 진료 횟수와 양 등도 조정할 수 있다. 신기술이 개발되면 이를 활용한 비급여 진료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줄기세포 무릎주사도 신기술을 활용한 비급여 진료다.
비급여 진료의 풍선 효과에 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경과손해율)은 다시 오르고 있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얻은 보험료에서 지급한 보험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손해율이 100%를 넘으면 보험사가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2022년말엔 백내장 과잉 진료가 줄어들면서 생·손보사의 손해율이 전년 대비 11.8%P(포인트) 급감한 101.3%를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비급여 진료가 팽창하며 2023년말 생·손보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03.4%로 다시 2.1%P 높아졌다. 특히 손보사의 손해율이 104.8%에서 107.1%로 2.3%P 올랐다.
실손보험을 판매할수록 손익이 나빠지자 보험 업계에선 실손보험을 판매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현재 생·손보를 합쳐 실손보험을 파는 회사는 17개에 그친다. 생보사 중엔 10개사가 판매를 중단했고 손보사도 3개사가 판매를 멈췄다. 실손보험을 계속 파는 보험사는 보험료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일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건강한 가입자의 보험료까지 함께 높아진다. 올해 실손보험 인상률은 백내장 수술의 진료 감소로 1.5%P에 그쳤으나 2023년엔 8.9%P, 2022년엔 14.2%P에 달했다.
비급여 과잉 진료를 잡지 않음으로써 의료 인력이 고수익을 보장하는 비필수과로 쏠리는 사회적 손실도 나타난다.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의 수익 차이가 커지면서 중증·필수 진료과를 선택하는 의사는 적어지고 미용과 비급여 진료 등을 보는 비필수과로의 수요만 증가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의료 관리가 불가하다 보니 '이럴 거면 실손보험을 팔지 않는 게 더 낫겠다'라는 의견도 제기된다"라면서 "실손보험을 정상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실손보험 '정상화' 어떻게…정보 비대칭 해소·비급여 관리 필요
━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4개 전문위원회별 개혁 과제/그래픽=윤선정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문가는 과잉 진료로 인한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으려면 비급여 진료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를 활성화하고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 체계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도 이런 인식에 공감해 '비급여 보고제도'를 확대하고 비급여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의료개혁 4대 과제에 포함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이 1068개 항목의 비급여 진료 관련 정보를 보고하도록 하는 비급여 보고제도를 시행 중이다. 제도에 따라 의원급 이상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은 비급여 항목의 비용·빈도·수술명 등을 보고해야 한다. 이 제도는 지난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먼저 시행했다. 당시 보고해야 할 비급여 항목은 594개에 그쳤으나 올해부턴 의원급 이상으로 보고 대상이 확대되는 동시에 보고해야 할 항목도 2배 가까이 늘었다.
비급여 보고제도는 실손보험 정상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진 의료기관별로 비급여 가격의 편차가 커도 실손보험 가입자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적정 가격을 모르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부르는 대로 진료를 받고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그러나 비급여 보고제도가 시행되면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의료기관의 비급여 가격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이지만 보험 업계는 비급여 가격의 정보 비대칭이 해소됨으로써 의료기관이 과잉 진료를 자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의 의료개혁도 실손보험 정상화 기대를 높이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 4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후 지난 10일 논의에 속도를 내기 위해 분야별 개혁 과제를 심층적으로 검토할 4개 전문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중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는 비급여 적정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실손보험의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료 가격이나 양은 의료기관이 결정할 수 있지만 비급여 보고제도를 통해 정보가 축적되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알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며 "비급여 진료 가격에 관한 최소한의 관리 기반이 마련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개혁 과제도 차질 없이 진행해 유효성이 너무 낮은 급여·비급여 진료는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과잉 공급되는 비급여 진료의 경우 '어디까지 필요하고 어디부턴 아니다'는 식의 구체적인 진료 적정성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험 업계에선 의료개혁을 통한 실손보험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비급여 항목에 관한 개선 없이 의대 증원만 이뤄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비급여 관리 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인 숫자만 늘어나면 과잉 진료만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실손보험 손해율이 지금보다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비급여 관리 체계 구축이 흐지부지될까 우려스럽다"며 "오랫동안 부각된 과제인 의대 증원만 이뤄지고 비급여는 개선되지 않으면 실손보험 정상화는 더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