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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으로 처음 찾아뵈었을 때도 박은정 씨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방금 마친 어머니가 양치를 해야 할 시간이라면서 분주하게 주방과 화장실, 어머니가 계신 방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돌본 시간 '10년'이 말해주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박 씨는 취재진을 응대하면서도 어머니에게도 말을 붙이며 능숙하게 움직였습니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한 물품이 집안 곳곳에 쌓여 있었고, 그것들을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잘 배치해 둔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티슈며 컵, 기저귀 등이 쌓인 어머니 방의 벽에는, 어머니가 병석에 눕기 전 찍은 사진도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씨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나홀로 간병 10년 차…멈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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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의 어머니는 지난 2014년 11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던 중 중앙선을 침범해 달려온 화물차와 부딪힌 겁니다. 하루아침에 자리에 눕게 된 어머니는 사고 이후 편마비가 왔고 치매도 앓게 됐습니다. 언어장애, 성격장애, 인지장애까지 함께였습니다. 사고 직후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치료를 받았고 이후 집으로 퇴원한 이래 박 씨가 계속 어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섬망 증세가 너무 심하셔가지고 의사들도 두 손 두발 다 들 정도? 그래서 6개월 치료하시고 집으로 모셨어요. 저희 엄마는 좀 폭력적이셨거든요, 병원에 계실 때. 집에 오시자마자 그냥 (그런 증상이) 바로 없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병원에 오래 모시는 것도 집에서 어머니를 돌봐줄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가족 가운데 박 씨만을 알아보는 터라 돌봄과 간병은 오롯이 박 씨의 몫이 됐습니다.
식사, 목욕, 말벗 되기 등 어머니의 모든 일상은 박 씨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당뇨가 있으셔서 어느 때는 (혈당이) 확 튀었다가 어느 때는 또 막 저혈당으로 떨어지고. 진짜 심할 때는 2시간 간격으로 뭘(식사를) 드려야 돼요. 애기 마냥. 2시간 간격으로, 아니면 저혈당이 오니까." 식사를 챙겨드리기 위해서, 또 욕창이 심할 때는 체위를 변경하기 위해서 2~3시간마다 알람을 맞춰 놓고 밤에도 새벽에도 어머니를 돌봐 왔습니다. 목욕을 시켜 드리면서는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두 명만 있어도 굉장히 쉬울 텐데 혼자서 하는 거는 저도 목욕시키다가 손가락 인대 두 번 끊겼고 발가락 골절도 한 네 다섯 번 정도 했었어요."
박 씨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교통사고 합의금(개호비 포함)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기요양급여가 제한됐습니다. 제3자로부터 이미 손해배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한도 안에서 장기요양급여를 행하지 않는다는 법 및 건강보험공단 방침에 따른 겁니다. 박 씨는 이후 어머니에게 당뇨가 생겼다는 등 이유로 법원에 소송까지 냈지만 결국 패소했습니다. 이런 제한 규정 자체가 (사고를 낸) 제3자가 책임을 피하는 것을 방지하고 보험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현재 어머니의 상태는 사고로 생긴 것이라 (새로운) 장기요양급여 제공사유가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장기요양급여가 제한된 터라 박 씨 어머니는 방문목욕이나 단기보호 등의 재가급여, 장기요양기관에 입소한 경우에 해당하는 시설급여 등 대상에서 모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박 씨는 사고 직후 어머니를 돌보게 되면서부터 회사도 그만뒀습니다. 이후 그간 모아둔 돈이나 친척들의 도움, 그리고 대출로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힘들어서 밤에 엄마 재워 놓고 밤에 일 잠깐 뭐 아르바이트 나가고 그래요. 그냥 최대한 아끼는 수밖에 없죠, 방법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아" 외로움, 고립감도
지난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보건의료노동조합이 실시한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에서도 박 씨에게서 볼 수 있는 가족 간병인들의 다양한 고충 양상을 알 수 있습니다. 간병인을 구하면 구하는 대로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간병인을 썼을 때 하루 9~11만 원의 간병비를 지급했다는 답변이 36.7%로 가장 많았는데, 이 부담을 지지 않으려면 가족이 직접 간병에 나서야 합니다. 가족이 간병하는 경우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이 전체의 61.2%를 차지하며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혔습니다. 뒤이어 '가족 내 갈등',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는 답도 뒤를 이었습니다. 비용 부담이 있는 간병인을 택할 것이냐, 내가 직장과 학교를 떠나 24시간 돌봄 대상자인 가족 옆에 남느냐.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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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혓바늘이 돋은 지 8년째'라는 박 씨는, 처음 간병을 시작한 초반의 3~4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힘들다'라고 말할 짬조차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짬이) 아예 없어서 정말 힘든 것도 몰랐고 나중에 돌아보니까 정말 너무 힘들었고 기억도 없을 정도로. '너 그때 뭐 했니' 하면은 딱히 기억나는 게 없어요." 그렇게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던 시간 동안 박 씨는 처음엔 특별히 고립이라는 느낌도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옛날 말고 요즘' 도리어 고립을 느낀다는 박 씨는 '외로움'이 크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그래요. 너무 외로워요." 언젠가는 다시 일을 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박 씨지만 그게 '너무 무섭다'고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긴장이 되느냐면 이력서를 쓴다 그러면 팔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흘러버린 시간 동안 세상은 너무 바뀌었고 그 사이 나이도 들어버렸다며, 이런저런 고민이 겹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고 했습니다. 박 씨가 홀로 견뎌 온 10년의 시간은 간병으로 인한 가족 돌봄의 시간이자, 일상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해 온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돌봄과 간병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인들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특히 이런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이 나이 어린 자녀에 해당할 경우, 즉 가족 돌봄 청소년일 경우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시간을 가족에 대한 돌봄으로 소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외로움과 고립감, 나아가 소진에 대해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는 "소진 단계에 도달하면 아무것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는 것, 이런 것들이 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돌봄 대상자인 가족뿐 아니라 돌봄 보호자인 가족의 삶까지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입니다.
가족 돌봄, 이제는 분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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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돌보는, 그리고 그 과정이 기약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이미 꽤 알려졌습니다. 보건복지부가 펴낸 2022년 장기요양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 대해 신체활동이나 가사활동을 지원해주는) 현행 장기요양보험에서는 "비공식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수급자의 가족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인 간병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직접 취득해 그 요양보호사에게 보상을 하는 제한적인 형태로 도움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입니다. 결국 "비공식 돌봄으로서 가족에 대한 지원 촉진을 위한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선 박 씨 역시 이런 비공식 돌봄을 10여 년 째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족이 지고 있는 이런 비공식적인 돌봄을 덜어주기 위해서 여러 정책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열린 '가족간병 돌봄정책 심포지엄 – 돌봄과 가족의 삶'에 참석한 정부 측은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를 강조했습니다. 병원이나 시설에 보내는 돌봄이 재정적 측면, 인권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특히 고령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모든 어르신들이 병원에서 살다가 돌아가실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지역사회 돌봄, 즉 커뮤니티 케어 실현을 위해 선도 사업을 실시하고 있고 특히 중증 질환의 경우 의료서비스도 제공돼야 하므로 방문의료와 재가의료를 보강하는 형태로 시범사업 예산에 반영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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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의료나 재가의료 서비스 등을 확대해 돌봄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돌봄을 도맡고 있는 보호자들의 짐을 함께 나눠지는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돌봄을 도맡고 있는 보호자들을 위한 복지 서비스 자체도 필요합니다. 가족을 꾸리는 것도 포기한 채, 자신의 모든 생활도 포기한 채 살고 있는 이들이 지고 있는 짐을 우리 사회가 이를 나눠지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부산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김민수, 부산대학교 이용호, 송지은이 쓴 '가족돌봄자의 돌봄부담 유형화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재가급여 수급자 가족이 겪고 있는 돌봄부담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지원 방안을 논하고 있습니다. "가족돌봄자의 신체적인 차원에서의 휴식 및 안정을 보장하고 가족 내 돌봄부담 역할을 분담할 수 있도록 가족돌봄자 대상 가족돌봄휴가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합니다(앞서 언급한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 역시 현재 일부 질환의 보호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자조집단 구성 등 외에도 개인에게 물질적, 심리적 지원이 현실적으로 들어가야 실질적으로 돌봄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치매 가족돌봄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치매가족휴가제'처럼 휴식 및 안정의 기회를 다른 중증 재가급여를 받고 있는 이의 가족돌봄자에게도 확대한다거나(추진 중) 가족돌봄자가 현행 가족돌봄휴가 및 휴직을 사용할 때에 급여를 일부라도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사례로 제시되고도 있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이유로 간병, 돌봄이라는 의무를 떠안게 되는 게 2024년 아직의 현실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간병이나 돌봄을 감당하고 있는 가족을 가리켜 그저 '효녀', '효자'라고 쉽게 칭찬해왔고, 그래서 더 이들은 의무를 주변과 나누지 못한 채 고립돼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사회가 그 무게를 분담해야 할 때입니다.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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