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3 (목)

"전화 없었다"는 이종섭, 통화기록 나오자… "지시 없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면 부인에서 선 긋기로… "통화는 있었지만 지시는 없었다"

‘격노설’ 관련 전부 사실 아니라던 입장서 “접한 사실 없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중심인물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속속 등장하는 정황 증거들 속에서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여 주목된다. 초기 단계에만 해도 제기된 의혹 자체를 강력히 부인한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자신은 의혹과 관련한 내용을 ‘접하지 않았다’며 선을 긋거나 법리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 설명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지난해 8월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실로부터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문자를 받거나 메일을 받은 게 없냐’는 질의에 “문자나 전화를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이 전 장관 외에도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통화기록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2일 낮 12시7분과 12시43분, 12시57분 총 3차례에 걸쳐 이 전 장관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모두 합쳐 총 18분40초였다. 이 전 장관 기존 주장의 신빙성이 흔들리게 된 셈이다.

통화가 이뤄진 시점은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직후였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이 통화하던 사이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보직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 밖에도 8월 2일을 전후로 대통령 경호처장을 비롯한 대통령실·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전 장관 변호인은 전날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8월2일 대통령과 장관의 통화기록은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지시나 인사조치 검토 지시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통화 이전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지시를 내린 상태였으므로 윤 대통령과 그에 관해 상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 측은 앞선 발언이 통화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혐의자에서 사단장을 제외하라는 통화가 없었다’는 취지였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증거를 통해 드러난 통화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 새로운 ‘방어선’을 그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른바 ‘VIP 격노설’과 관련해서도 이 전 장관은 미묘한 입장 변화를 드러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9월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 격노라든지, 혐의자를 제외하라고 외압을 했다든지 이런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고 (박정훈 전 수사단장) 변호인 측에서 허위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통해 격노설을 뒷받침하는 인적·물적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수처는 해병대 간부 회의에서 김 사령관으로부터 격노설을 들었다는 다른 간부의 진술을 확보했고, 김 사령관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관련 녹취 파일도 복구했다. 최근에는 해병대 방첩부대장 A씨와 김 사령관이 격노설에 대해 대화하는 녹음파일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령관의 통신기록에는 A씨와 지난해 7월31일, 8월2일 두 차례 통화한 사실이 담겨 있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듯한 정황이 나오자 이 전 장관 측은 지난 24일 공수처에 제출한 3차 의견서에서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격노설 자체를 부인했던 예전과 달리 자신이 ‘접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이 전 장관 측은 “만약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었다 하더라도 장관은 의무 없는 일(결재 번복)을 억지로 한 피해자일 뿐인데 왜 피고발인이 돼야 하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미묘한 변화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구체적 내용 없는 통화목록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법리적 방어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