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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서울부터 경남까지… 역대 최대 ‘北 오물폭탄’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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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대남 풍선 살포 재개

동시에 GPS 전파 교란 공격도

조선일보

전국에 날아든 北 대남 풍선 - 29일 경남 거창군 위천면 한 논에서 북한이 날려 보낸 대남 풍선이 발견되자,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북한은 이 같은 풍선에 각종 오물과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매달아 하루 동안 300개 가까이 날려보냈다.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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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내려보낸 ‘오물 풍선’ 수백 개가 국토 전역을 뒤덮었다. 경기도·강원도 접경 지역은 물론 우리 군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백두대간 너머인 경남 거창에서까지 발견됐다.

군에 따르면 북한은 28일 밤부터 29일 오후까지 10여 시간에 걸쳐 오물을 매단 대형 풍선을 살포했다. 북한이 최근 한 대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도발’로 규정하고 지난 26일 “휴지장과 오물짝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한 지 이틀 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29일 오후 4시까지 확인된 대남 풍선은 260여 개로 북한군이 하루 사이 살포한 것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라고 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9일 밤 담화를 통해 대남 오물 풍선이 “인민의 표현의 자유”라며 살포를 제지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대한민국 정부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바”라고 했다. 우리 정부가 대북 전단이 표현의 자유라며 금지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비꼰 것이다. 김여정은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이라며 “계속 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남 풍선에는 가축 분비물이 들어간 거름, 담배꽁초, 종이 쓰레기 등 오물이 든 봉투가 달려 있었다. ‘삐라’ 등 체제 선전용 전단 등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쓰레기만 남측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전후해 대남 풍선 살포를 멈췄는데 약 6년 만에 이를 재개했다. 합참은 “저급한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북한은 29일 새벽에는 서해 지역에서 남측을 향해 GPS 전파 교란 공격을 실시했다. 군은 대남 풍선과 GPS 교란으로 인한 인명·재물 피해는 없다고 전했다. 북한의 ‘회색 지대(gray zone) 도발’이 본격화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쟁이 아닌 군사 수단으로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으려는 전략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국민과 정부가 이런 심리전·복합 위협에 과연 동요하는지 테스트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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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남 오물 풍선’이 29일 전국에서 발견됐다. 왼쪽은 경기 파주시 파평면에 풍선이 떨어진 모습이고, 가운데는 서울 지역에서 풍선이 터져 쓰레기가 뿌려진 모습이다. 서울 지역에는 ‘옷물비누’라고 적힌 풍선도 떨어졌다(오른쪽). /뉴스1·합동참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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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 지역인 경기 동두천·파주 등지에서는 28일 밤부터 풍선 잔해 및 오물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빗발쳤다. 풍선은 접경 지역에서 300여km 가까이 떨어진 경남 거창군에서도 발견됐다. 군 소식통은 “재래식 폭탄에 방사성 물질을 채운 북한 ‘더티밤(dirty bomb)’ 공격은 걱정해봤지만 정말 쓰레기를 보낸 것은 예상 밖”이라고 했다.

경기도 거주민들은 28일 밤늦게 발송된 재난 문자로 공포에 떨기도 했다. 재난 문자는 북한 대남 전단 추정 미상 물체가 식별됐다는 내용이었으나, ‘대남 전단 추정 미상 물체’라는 표현이 모호한 데다 재난 문자에 영문 ‘Air raid Preliminary warning’(공습 예비 경보)이 함께 포함됐기 때문이다. 공습이란 단어를 보고 실제 전쟁이 난 것이냐는 문의가 잇따랐다고 한다. 경기 연천군에 거주하는 박다솜(36)씨는 “느닷없이 울리는 경보 문자에 여느 때와 같이 실종 신고 문자인 줄 알았더니 뜬금없이 대남 전단이 살포됐다는 내용이었다”며 “심각한 상황일까 불안해 한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군이 살포하고 있는 대남 쓰레기 풍선은 지름 2~3m 크기 풍선이 2개 달렸고 정전기로 풍선을 터뜨리는 전자기기가 붙어있는 형태로 알려졌다. 타이머 방식으로 특정 시간이 되면 풍선이 터지며 쓰레기가 든 봉투를 땅에 떨어뜨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과거에 견줘보면 40~50㎏ 무게까지도 운반이 가능하다. 군은 28일 밤 대남 쓰레기 풍선 남하를 포착한 뒤 ‘매뉴얼대로 대응하라’고 전파했다고 한다. 민간 지역에 대한 조준 사격은 대민 피해가 우려되니 격추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군 관계자는 “대북 전단,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활용한 비례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우리도 똥을 보낼 수는 없으니 북한에서 인기라는 영화 ‘파묘’를 담은 USB를 살포하자” “북한이 남측에 두엄을 보냈다는데, 우리도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전역에 ‘비료 풍선’을 날려 보내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의 전방위적 풍선 살포를 해프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대남 풍선을 통해 한반도 전역에 대한 투사력을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이 생화학 병기를 넣은 풍선을 보낼 경우 민간 피해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합참은 “북한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 쪽으로 전단을 살포해 자동차가 파손되는 등의 피해를 입혔고, 풍선에 오물을 넣는 등 저급한 행동을 했다”며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을 경우 만지지 말고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북의 무차별 대남 쓰레기 풍선 살포에 대북 단체도 맞대응을 예고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인 이달 10일 오후 11시쯤 대북 전단 30만장과 트로트 동영상 등을 저장한 USB 2000개를 풍선에 실어 북으로 보낸 바 있다. 박상학 대표는 “바람의 방향이 북으로 바뀌는 시기에 다시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낼 계획이다. 이번엔 20만장 정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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