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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텅텅 빈 물류·지식산업센터의 재앙, 첫 단추는 누가 끼웠나 [공실수렁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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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성장세에도 공실 넘쳐나는 저온 물류센터

면밀한 사업성보다 ‘2중 보증’에 기댄 한국형PF

금감원 ‘보증 아니다’ 해석…“신탁사 보증 날개 달아”

경향신문

지난 3월 준공된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준공을 마쳤으나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다. 이 물류센터는 시공사인 에스원건설이 책임준공 의무를 지키지 못하면서 신탁사로 준공 책임이 넘어갔다. 2024.05.27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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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강원도 소재 중소건설사 에스원건설의 회생재판이 시작되자 593명이 ‘받을 돈이 있다’고 줄을 섰다. 하나·농협·신한 등 5대 시중은행부터 건설공제조합·오티스엘리베이터·형제펌프카 등 건설업계, 울엄마밥상·김밥천국 등 동네 식당까지 모두 채권자로 이름을 올렸다. ‘물류센터 특화 건설사’라며 연달아 수주 실적을 쌓았던 에스원건설이 수많은 채권자를 남기고 부도를 공식화기까지는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7년 설립된 에스원건설은 당초 교회 신축공사, 체육센터, 5층 병원 등 강원도 내 소규모 건축일을 맡아 처리하는 회사였다. 수도권에 진출한 것은 2018년 무렵이고, 1만제곱미터(㎡) 규모 이하 작은 사업장이 대다수였다.

이 회사가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건 2020년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사업에 진출하면서다. 당시 저온 냉장물류센터 개발이 인기였다. 코로나19로 밀키트 등 신선 식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리자, 냉장 창고를 구하러 다니는 유통업체들이 줄을 섰다. 특히 인천은 개발자들이 몰리는 핵심지였다. 물류센터 개발사 연교의 조종한 대표 말이다.

“원래 강남에서 오피스텔을 많이 짓던 한 신생 개발사가 인천에서 물류센터를 처음 지어서 2000억원을 남겼어요. 이 회사 재무제표를 보니까 매우 적은 자본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낸 거에요. 이때부터 굵직한 시행사에 금융권이 붙으면서 인천 물류센터 사업이 우후죽순 시작된 거죠”

통상 인천은 13만㎡ 이상 되는 사업장이 많았지만, 자본력이 약하고 물류센터 공사 경력도 없었던 에스원건설은 2만8000㎡ 수준의 소규모 사업장을 맡았다. 대신 이 회사는 인천 건을 밑바탕 삼아 2022년에만 평택 어연리, 안성 내강리 물류센터를 연달아 수주했다.

‘물류센터 특화 건설사’로 거듭나겠다던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스라졌다. 2022년 건설원가가 급등하면서 공사를 진행할수록 손해가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천 일대는 순식간에 물류센터 공급이 늘었다. 준공 후 기대했던 임대료 수익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연교 자료를 보면, 인천 물류센터(건축연면적 5000평이상 기준) 인허가는 2018년 3건에서 2020년 26건으로 폭증했다. 수요를 압도하는 공급의 결과는 처참했다. 상업용부동산 정보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인천을 포함한 서부권역(인천·시흥·안산)의 저온 물류센터 공실률은 54.5%에 달한다. 업계에선 “2030년이 되어도 저온물류센터 물량은 소화되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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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사 손 데는 곳마다 초과공급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가능하게 만들어”


과잉공급의 이면에는 시공사와 신탁사의 ‘2중 보증’으로 구성된 한국형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있다. 교과서적 의미의 PF는 미래 사업성을 면밀하게 따져 적은 자본력으로도 공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시행사는 통상 자기자본 10%만 가지고 PF사업을 벌이는데, 여기서 2중 보증이 붙는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순수한 의미의 PF는 보증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금융권이 사업성을 면밀히 따지는데, 한국의 PF는 경기가 좋을 때 공급하면 다 팔린다는 사고방식이 깊숙히 박혀 보증만 채우면 자금이 조달된다”며 “비주택 사업처럼 미분양 위험이 높을 수록 신탁사를 낀 추가 보증이 들어와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개발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원창동 물류센터 개발사업도 에스원건설이 1차로 책임준공 확약을 섰고, 신탁사인 신한자산신탁이 2차로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책준형)을 보강하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시행사가 무너지면 시공사가, 시공사가 무너지면 신탁사가 공사를 책임지고 끝낸다는 사실상의 2중 보증이다.

2중 보증은 지식산업센터·오피스텔·생활숙박시설·물류창고 같은 사업성이 불투명하고 위험도가 높은 사업일수록 많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책준형 사업장 중 70%가 비주거 상품이다.

책준형은 부동산활황기 겉잡을 수 없이 늘었다. KB부동산자산신탁과 하나자산신탁 위주로 책준형 사업이 진행됐던 2017년만해도 책준형 PF대출 잔액은 3조4000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부동산신탁사 14개사가 뛰어들면서 이 액수는 2023년 말 24조8000억원까지 불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 자기자본(5조5000억원)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책준형이 확산되면서 비주택 상품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로 초과 공급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생활형숙박시설(건축물대장 기준)은 2022년 8만6920개로, 2018년 3만여개에서 2배 이상 늘었다. ‘미분양 애물단지’인 지식산업센터(설립승인 기준)는 지난 1월 말 전국에 총 1529곳이 공급됐는데, 이는 4년 전에 비해 362곳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경매시장에서는 전년 대비 70% 늘어난 지식산업센터 물량이 쏟아지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50~90%에 달하는 처참한 공실 현황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위기국면에서 보증 본색 드러낸 책준형
대주단 “계약대로 보증 책임” vs 신탁사 “연체이자만 지급”


경향신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주택건설회관에서 열린 ‘부동산PF 정상화 추진을 위한 금융권·건설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2024.3.21|공동취재단


신탁사의 보증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 이를 사실상 가능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금융당국이었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16년 11월 준법감시인 간담회에서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신탁사가 수탁재산의 손실을 직접 보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지급보증 및 손실보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입장을 냈다(2018년 한국부동산원 부동산분석 중). 신탁사가 책임지는 범위는 공사일 뿐, 시행사가 빌려온 토지비 등 원리금까지 갚을 필요가 없기에 ‘보증’일 수 없다는 해석이다. 현안을 아는 한 금융위원회 직원은 “책준형을 안하던 신탁사들이 경쟁사를 견제하면서 이때 당국의 해석에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간담회 내용을 묻는 질의에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유권해석을 내릴 권한이 없고, 신탁사업은 모두 개별 계약”이라며 “의견을 줬대도 그것은 책준 상품이 손해를 배상하는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지급보증과 다르다는 원론적 해석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해석에는 함정이 있다. 부동산 경기가 좋다는 가정 하에서만 ‘보증이 아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연구위원은 “금리상승, 분양 악화, 중소형 시공사 부도 등 지금처럼 상황이 나빠지면 신탁사는 PF대출 원리금인 토지비보다 더 큰 규모의 공사비를 물 수 있다. 금액에서나 구조에서나 실제 보증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책준형은 금리 인상과 공사비 상승이 동시에 몰아친 2022년 보증의 본색을 드러냈다. 에스원건설은 높아진 공사비를 시행사 대신 떠안다가 결국 원창동 물류센터 준공기한(2023년 4월30일)을 못맞췄다. 시행사 채무를 인수할 상황에 직면한 이 회사는 공사를 포기하며 부도 수순에 들어갔다. 공사 책임은 이후 신한자산신탁에 넘어왔는데, 이 회사 역시 6개월 연장된 준공기한(2023년 10월30일)을 5개월 더 넘겨서야 공사를 마쳤다. 대출원리금에 대한 이자는 겉잡을 수 없이 증가했다. 이 물류센터는 준공 2개월이 넘도록 아직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다.

KB증권 등 대주단은 최근 신한자산신탁과 에스원건설을 상대로 공사를 계약대로 끝내지 못하면서 발생한 대출원리금과 연체이자 등 총 575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신한자산신탁은 뒤늦게 ‘신탁사는 보증을 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세우며 준공기한이 지연되면서 생긴 연체이자만 물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KB증권 관계자는 “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은 책임준공 의무 위반시 채무인수를 하는 ‘시공사 책임준공’과 동일한 구조”라며 사실상 보증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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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모습. 인천 일대는 2020년부터 물류센터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일대 공실률이 치솟았다. 저온물류센터가 특히 과잉공급됐다. 2024.05.27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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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사 낀 금융계신탁사 부실 현실화
당국 제도개선 소극적 “시장에서 정리”


이러한 분쟁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새마을금고 대주단도 경기도 안성시 물류센터 및 평택 물류센터와 관련해 신한자산신탁를 상대로 조만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원창동과 동일한 내용이다. 신탁사의 배상 책임이 늘면서 부실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말 국내 14개 신탁사 기준 책임준공 기한을 넘겨 소송에 직면한 사업장 관련 PF는 1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6개월 안에 책임준공 기한이 도래하는 등 경과가 임박한 사업장 PF까지 합치면 2조7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물어줘야 할 PF규모가 최소 자기자본의 35%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신탁사의 부실화는 곧 금융지주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3년 9월 기준 책준형 사업장이 가장 많은 KB부동산신탁은 2022년 12월말 2423억원이었던 신탁계정대여금이 9개월만에 5050억원으로 108.4% 늘어난 바 있다. 미분양이 나면 그대로 신탁사 손실이 되는 돈이 그만큼 늘었다는 이야기다. 정 교수는 “개별 신탁사들은 자체 자본이 크지않은 만큼 결국 지주사들이 여차하면 유동성 개입에 나설 수 있어 금융시스템 전반의 부실로 확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국은 사실상 이 문제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이 조만간 발표하는 부동산PF 제도 개선은 신탁사의 건전성 비율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부동산 활황기 신탁사끼리도 경쟁이 붙으면서 계약 조건이 점점 더 보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확대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미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신탁사들의 책준형 사업이 줄어든 만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탁사들이 올들어 책준형 사업을 한 건도 수주하지 않으며 자체적으로 책준 사업을 벌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이 다시 뜨거워지면, 책준형이 재개돼 과열을 부채질 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그 피해는 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9년 원주에서 1억8200만원짜리 지식산업센터 4개 호실을 분양받은 이미용씨(70·가명)는 현재 ‘계약 취소’를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선 승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이씨가 말했다. “대출이 분양가 80%까지 나온다, 일단 계약만 걸어두면 분양가에 프리미엄이 바로 붙고 월세도 놓을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무리하게 계약했다. 그땐 공급이 이렇게 많이 나올지 전혀 예상 못했다.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르는 순간 공실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계약 취소가 안되면 나는 살 수가 없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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