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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3000억 불법 유사수신 업체 “배당금 돌려달라”… 대법 “반환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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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계약 유효” 첫 판단

조선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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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 부동산 투자 사기 사건’을 일으킨 불법 유사수신 업체가 초기 투자자를 상대로 “계약이 무효이니 받아 간 배당금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유사수신 업체가 투자자와 맺은 각종 계약을 일괄 무효로 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근거가 됐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최근 A사의 회생 관리인이 투자자 B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심의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A사는 부동산 경매와 부실채권 매각으로 높은 수익금을 지급하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그러나 A사는 신규 투자금을 이용해 약정 기간이 끝난 투자자들에게 투자 원금과 수익금을 상환하는 ‘돌려막기’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사의 초기 투자자였다. B씨는 2018년 6월 A사에게 수익률 20%를 약속받고 3000만원을 투자했다. A사는 이듬해 7월까지 B씨에게 배당금 580만원을 지급했다. 투자 원금도 고스란히 돌려줬다.

그런데 A사의 불법 유사수신 행위가 뒤늦게 적발되며 문제가 됐다. A사 경영진 부부는 3000명이 넘는 투자자에게 3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모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 등으로 2021년 기소됐다. 대법원은 이들 부부에게 각각 징역 25년, 20년을 확정했다. A사는 2021년 8월부터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A사의 회생 관리인은 B씨를 상대로 2022년 9월 소송을 냈다. A사 측은 “유사수신 행위가 불법이므로, B씨와의 투자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무효인 계약에 따라 지급한 배당금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누구든지 유사수신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유사수신행위법 3조의 성격이 쟁점이 됐다. 이 조항이 불법 행위를 처벌하고 유사수신 계약의 효력까지 무효로 만드는 규정이라면 B씨는 A사에게 배당금을 반환해야 한다. 반면 불법 행위는 처벌하되 계약의 효력은 인정하는 규정이라면, B씨가 배당금을 돌려줄 일도 없게 된다.

1심과 2심은 해당 조항을 유사수신 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규정으로 보고 B씨의 손을 들어줬다. A사가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유사수신 행위를 금지한 체결된 계약의 사법상 효력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것은 선량한 거래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금융질서를 확립하려는 입법 취지에 실질적으로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사수신 계약이 처음부터 무효라면, 투자자나 피해자가 계약 이행을 업체에 촉구할 수 없고 오히려 B씨처럼 계약에 따라 받은 배당금을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유사수신 행위가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사정 때문에 체결된 계약의 효력이 당연히 부정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사건은 소가가 3000만원 이하인 소액 사건으로, 대법 판례와 상반된 판단이 있는 등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해당 유사수신 조항에 대한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으므로 법령 해석의 통일을 위해 이 쟁점에 관해 판단했다”고 밝혔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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