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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슈 음주운전 사고와 처벌

"음주운전 이렇게 하면 구제된다" 꼼수 공유하는 도로 위 '김호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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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처벌 피하는 정보 공유]
헌혈내역서 준비·메모리카드 제거 등
변호사·행정사들은 감형 마케팅 활발
꼼수 악용 음주운전 무죄 판결 많아
"상시 단속하고, 법 엄격 적용해야"
한국일보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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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33)이 구속된 데는 사고 직후 허위 진술과 증거 인멸 등 꼼수를 부린 정황이 결정적이었다. 김씨 사건으로 드러난 각종 꼼수들은 실제 음주운전자들 사이에서는 횡행하는 수법이다.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법을 자문해주는 속칭 '음주 구제 일타 변호사'도 있다. 음주운전 재판에서 피고인 무죄 판결은 비일비재하다.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는 꼼수를 막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스 차 몰면 되지”…음주운전자들 꼼수 공유

한국일보

음주운전자들이 모인 한 오픈채팅방에서는 수사, 재판 과정에 대한 수많은 조언이 오갔다. 오픈채팅방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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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자들은 온라인상에서 처벌을 피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 혈중알코올농도·음주운전 횟수·수사 진행 단계 등 구체적인 정보를 통해 회원을 모집한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주변 조언을 토대로 음주운전 적발 시 대처 방법을 공유한다.

음주운전 형량을 낮추는 법이 대표적이다. "음주 측정 후에는 차를 버리고 현장을 벗어나는 게 유리하다"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부터 없애라" "헌혈 내역서를 준비해라" "반성문에 생계가 어렵단 얘기를 진솔하게 적어라" 등의 감형 꼼수가 쏟아지고 있다. 10월 시행되는 음주운전 재범자 차량 음주운전방지장치(시동 걸기 전 호흡 검사에서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아야 시동이 걸리는 장치) 설치 의무화에 "리스 차를 몰면 된다" 등의 예상 편법까지 나왔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들의 영업도 기승이다. 일부 행정사들은 음주운전 반성문 대필 유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음주운전 예방 교육 수료증과 관련 캠페인 활동 증명서도 대리해준다. 이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서는 처벌 수위를 낮추는 상담과 사례, 후기 관련 글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음주운전 구제 변호사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음주운전 관련 법률 상담 비용은 30분에 최저 5만 원, 수임료는 50만~500만 원대다. 이들은 음주운전 발생 직후 대처법부터 경찰 조사에서 진술하는 법, 피해자와 합의하는 법 등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한다. 김호중도 사건 직후 전직 검찰총장 직무대행 출신인 조남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다.

무죄 판례 '수두룩'... 측정 거부 비일비재


꼼수는 실제로 통한다. 음주운전 후 술을 마셔 단속을 피하는 일명 '술타기' 수법이 대표적이다. 김호중도 실제 사고 직후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매해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전북에서 트럭 기사 일을 하던 A씨는 음주운전 사고 직후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와 이온음료를 사 마셨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A씨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정확한 음주 측정이 불가능하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무죄를 따져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됐다.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검찰은 사고 후 추가 음주를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어줄 것을 20일 법무부에 건의했다.

음주 측정을 거부하는 편법도 효과가 있다. 30대 B씨는 1월 부산에서 음주운전 후 출동한 경찰에게 난동을 피워 음주 측정 거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음주운전은 했지만 음주 측정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경찰관은 "피고인이 만취해 도저히 요구할 상황이 아니어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음주 측정을 요구한 내용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B씨 손을 들어줬다.

꼼수가 통하니 음주 측정 거부는 더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발생 건수는 2018년 14만445건에서 2022년 10만291건으로 줄었다. 반면 음주 측정 불응 건수는 매년 증가세다. 2019년 2,684건에서 2022년 3,920건으로 늘었다.

이외에도 꼼수로 볼 여지가 있는 무죄 판례가 수두룩하다. 지난해 4월 서울북부지법은 음주 후 90분 이내에 측정된 혈중알코올농도를 두고, 적발 기준(0.03%)보다 조금 높게 나온 걸로는 사고 시점 수치를 알 수 없어 음주운전으로 보기 어렵다고 무죄 판결했다. 또 대전지법은 음주운전으로 시설물을 들이받고 차에서 잠든 20대에 대해 "고의로 운전을 하려고 했다면 사고 후 차를 방치하고 잠을 자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문가 "음주운전 수시 단속하고 엄벌해야"

한국일보

지난달 18일 오후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인근에서 경찰이 고속도로 음주운전 및 과태료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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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처벌을 강화하기보다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시 단속도 필요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윤창호법(음주운전 가중 처벌) 시행 이후 처벌만 강화하는 건 단속을 피하는 꼼수만 늘어날 뿐, 재범 방지 효과는 미미하다고 드러났다”며 "교통경찰만 단속하는 게 아니라 지구대 등 일선 경찰들이 상시로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사후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추하는 '위드마크' 공식과 음주대사체 검사 등 추적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주운전 적발 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음주운전을 하고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아 꼼수가 통한다는 게 입증됐다"며 "김호중 구속을 계기로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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