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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치매로 잃어버린 기억력, 수술로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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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장진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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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손예진이 열연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치매는 단지 노인에게 뿐만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뇌리에 남게 했다.

치매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는 퇴행성 신경계 질환으로 수명이 길어지면서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실정이다.

치매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될 수 있지만, 기억력 감퇴가 가장 흔한 증상이다. 치매가 ‘암보다 무섭다’고 하는 이유도 아내나 남편, 자녀 등 가장 가까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해 가정이 황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직 마땅한 ‘기적 신약’ 같은 약물 치료법도 없는 이 치매의 잃어버린 기억을 신경외과적 수술법으로는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필자 같은 신경외과 의사들이 당연히 도전하고 풀어야할 큰 숙제이고, 이 해결법을 찾기 위한 실마리로 새로운 신경외과 영역의 임상 및 동물 연구가 실로 우연히 발견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초음파 뇌수술’은 수전증과 근긴장이상증 등 운동 이상 신경계 질환을 수술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각광을 받고 실제로도 임상에서 수많은 환자에게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초음파 뇌수술은 또 다른 치료 메커니즘을 뇌와 뇌혈관 사이에 있는 ‘뇌혈관 장벽(Blood Brain Barrier·BBB)’을 일시적으로 열게 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이를 통해 치매와 뇌암을 포함한 다양한 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로 응용하고자 필자를 포함한 세계 선도 연구 기관에서 경쟁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뇌혈관 장벽은 세균, 바이러스 및 독성 물질이 연약한 뇌 속으로 유입되는 걸 막는 인체의 중요한 방어 메커니즘이지만 동시에 치매·뇌암 등 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약물 등이 뇌 속으로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하는 골치 아픈 존재이기도 하다.

최근 필자 등에 의해 초음파를 이용해 뇌혈관 장벽을 안전하게 일시적으로 열 수 있는 기법이 개발 문헌으로 보고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치료초음파재단의 연구비 지원으로 치매 환자의 새로운 초음파 수술 치료법 개발이 연구되고 있다. 앞으로 이 초음파 뇌수술 기법은 치매와 뇌암뿐만 아니라 수많은 난치성 신경계 질환의 극복 연구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의 치매 치료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수술법이 현재 신경외과 영역에서 파킨슨병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계 질환 치료에 쓰이는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DBS)’이 있다. 이전에 고도 비만 치료를 위해 뇌심부자극술에 의한 비만의 치료 결과를 분석하던 캐나다 연구팀은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즉 뇌 심부를 자극하자 환자가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공원에서 놀던 장면 등 수많은 기억을 세세하게 기억해낸 것이다. 최근까지는 상실된 인간 기억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되살릴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이 연구는 전 세계 뇌과학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관련 동물 및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제 등으로 인해 이 분야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필자 연구팀이 동물 실험을 통해 뇌심부자극술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즉 치매 쥐 모델을 이용해 치매 쥐가 뇌 심부를 자극해 원형 수조(지름 2m)에서 물에서 안전한 플랫폼을 자극을 받지 못한 치매 쥐보다 더 빨리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치매로 기억력을 잃은 상태에서 뇌를 자극해 치료하면 기억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물론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초음파 뇌수술과 뇌심부자극술 등은 치매 환자의 기억력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고 치료법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은 맞지만, 아직 임상에서 확실한 치매 치료법으로 정립되기에는 검증할 사항 및 추가 연구 보완돼야 할 사항이 아주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개발되고 언론에 크게 홍보된 다양한 약물 치료법도 아직 환자의 진행된 치매 증상을 제대로 회복하기엔 무리이고,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며 동시에 약물 투여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따라서 필자 등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초음파 뇌수술 및 뇌심부자극술 등 외과적 수술 분야의 임상과 기초 동물 연구에도 약물 연구 못지않게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수술적 치료법이 치매 치료법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실제 임상 영역에서 쓰이길 기대한다.
한국일보

장진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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