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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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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걸리면 왜 ‘소주 병나발’ 불까?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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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22년 7월 대구 북구의 한 고속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시속 140㎞로 달리다가 다른 차를 들이받았다. 그대로 도주한 A씨가 향한 곳은 휴게소였다. 이날 A씨가 경찰에 붙잡혔을 때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을 넘는 0.296%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휴게소 안에서 소주 1병하고도 1/3병, 약주 1병을 전부 마셨다며 ‘지금 나온 음주측정 결과는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A씨처럼 음주운전 당시의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방해하기 위해 추가 음주를 하는 일명 ‘술타기’ 시도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음주 뺑소니 의혹으로 전 국민의 공분을 산 가수 김호중이 사고 이후 캔맥주를 구매한 것을 두고도 이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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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이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와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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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타기 시도,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운전자가 도주하는 등의 이유로 뒤늦게 혈중알콜농도 검사를 해야 하는 경우, 수사기관은 위드마크 공식을 사용해 운전 당시의 상태를 역추적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인데다 사람마다 체질 등이 다르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위드마크 공식으로 피고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계산 시 가장 유리한 수치를 적용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운전자가 음주운전 처벌 기준인 혈중알콜농도 0.03% 이상인 상태에서 운전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워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는 경우도 나온다. 음주 상태에서 사고를 냈을 경우 일단 도주해 추가 음주를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서울북부지법은 음주운전 의심 차량으로 신고돼 자택에서 혈중알코올농도 검사를 시행했을 때 음주운전 처벌 가능 수준(0.124%)의 결과가 나온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는 경찰이 찾아오기 전 집에서 소맥 2잔을 마셨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후행음주로 인해 상승했을 수 있는 최대 혈중알코올농도가 검찰 측 주장(0.056%)보다 높은 0.118%라고 보고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 측 계산으로 B씨는 운전 당시 열중알코올농도가 0.068%였지만, 재판부는 B씨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위드마크 공식을 사용했을 경우 혈중알코올농도가 운전 당시 0.003%까지 낮았을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B씨의 주장을 부정할 만한 정말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재판부는 후행음주가 혈중알코올농도에 최대한의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운전 당시의 상태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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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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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무죄 인정하지만…술타기 문제 있어”

지난해 12월 대법원도 비슷한 취지에서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화물차 운전기사 A씨는 2019년 7월 전북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하다 다른 차를 들이받았다. 보험회사 직원이 다가오자 급히 현장을 벗어난 그는 근처 슈퍼에서 소주 1병과 복숭아 음료, 종이컵을 산 뒤 3번에 나눠 이를 전부 들이켰다.

현장에서 측정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9%였지만, 재판에서 A씨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후행음주로 인한 상승치를 제외해준 결과 그의 음주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처벌 수치에 미달하는 0.028%만 인정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하면서도 후행음주 ‘꼼수’를 방지할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죄증(범죄증거)을 인멸하기 위한 의도적인 추가 음주 행위를 통해 음주운전자가 정당한 처벌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정의의 관념이나 안전사회를 염원하는 국민적 공감대 및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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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의도적인 법질서 교란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추가음주 사안의 현황과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파악해 입법적 조치 등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고가 명백히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술을 마셨음을 인정하면서도 당장 이를 처벌할 법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24일 대법원 판결서검색을 통해 확인되는 2020년 1월1일부터 현재까지 음주운전 후 ‘추가음주’나 ‘후행음주’가 이뤄져 판례에 영향을 준 음주운전·위험운전치상 관련 판례는 총 22건이다.

반면 후행음주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위드마크 공식을 통해 뒤늦게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올해 들어 재판을 받은 음주운전 뺑소니(사고후미조치) 사건 10건 중 후행음주가 이뤄지지 않은 9건은 모두 위드마크를 통한 혈중알코올농도가 정정 없이 재판에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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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행락지 및 스쿨존 음주단속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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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술타기 시도했지만 처벌 못 피해

A씨의 경우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A씨에게 가장 유리한 수치로 음주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운전 당시 처벌 기준을 넘는 0.039%의 주취 상태였다는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A씨가 경찰 조사에서 주장한 공황장애 등은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지 않았다.

A씨가 후행음주를 빌미로 경찰이 추산한 수치 자체가 부정확하다고 주장하자 재판부는 “이런 사정만으로 무조건 혈중알코올농도가 증명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운전 후 소주 1병과 1/3병, 약주 1병을 마셨다는 피고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피고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판결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후행음주에 대해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뺑소니 사고를 내고 술을 마신 경우, 후행 음주를 기준으로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는 것보다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며 “후행음주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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