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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모내기하고, 예식 올리고… 공공기관 청사의 유쾌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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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청사에 벼 재배… 왜가리도 날아와
용인시청에선 18년 간 500여 쌍 백년가약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은 기네스북 등재
부산시청사 놀이터 '들락날락' 견학 줄이어

한국일보

22일 오후 울산시청 앞마당에 조성된 논에서 왜가리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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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울산시청 앞마당에 조성된 논에서 왜가리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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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진짜 논이다! 어머, 왜가리도 있네?”

22일 오후 울산시청 앞마당. 버스에서 내려 민원실로 향하던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한곳에 몰렸다. 시선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왕복 6차선 도로를 낀 고층빌딩숲 한가운데 자리한 이른바 ‘텃논’. 울산시가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옛 추억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최근 청사정원 일부에 210㎡(65평) 규모로 조성했다. 지난 16일에는 시장이 직접 ‘청렴미’로 이름붙인 벼를 심은 뒤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풀고 원두막도 세웠다. 가을엔 청렴미를 수확해 떡을 지어 시민들과 나누는 행사도 열 예정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단풍 중에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누런 벼”라며 “삭막한 도심에 특색 있는 볼거리와 휴식처를 제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논이 생기고부터는 개울, 하천 등에서나 볼법한 왜가리까지 날아들면서 구경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여권 발급차 시청에 들린 시민은 “방금 왜가리가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신기했다”며 “정원에 조경수나 꽃이 아닌 모내기를 해놓은 관공서는 처음이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올렸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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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는 청사 앞마당 정원 일부에 논을 조성해 '청렴미'로 이름붙인 벼를 심은 뒤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풀고 원두막도 세웠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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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가 청사 앞마당 조성한 논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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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이미지의 관공서가 유쾌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갤러리, 도서관, 결혼식장 등 다양한 용도로 문턱을 낮추는 것은 기본이고 무인로봇카페, 스마트팜, 미디어월 등 최신 트렌드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접목하면서 색다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15개 건물을 잇는 옥상정원은 관공서의 틀의 깬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축구장 11배가 넘는 7만9,000㎡ 면적에 310종 144만여 본의 수목과 식물이 식재돼있어 매년 1만여 명이 찾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기존에는 1~2구간(1동~13동)만 개방하다 올해는 전 구간 빗장을 풀었다. 부산시가 2022년 9월 전국 최초로 시청 내에 개관한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미래형 놀이터로 작은도서관, 미디어아트 전시관, 3차원(3D) 동화체험관, 발광다이오드(LED) 미디어월, 가상현실(VR) 체험 공간 등에서 다양한 디지털 체험이 이뤄진다. 부모들 사이에선 ‘시청에 놀러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기준 해외 9개국 11개 기관, 국내 52개 기관이 들락날락을 방문해 벤치마킹했다. 전북도가 지난 3월 의회 앞 잔디광장에 조성한 ‘맨발 황톳길’도 인기다. 길이 140m, 폭 1.5m에 화강 디딤석, 그늘막, 세족장 등을 갖췄다. 전주 효자동 주민 임모(46)씨는 “저녁 식사 후 가족과 함께 도청 내 황톳길을 걷는다”며 “맨발로 시원하고 말캉한 흙을 밟으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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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에는 15개의 청사 건물을 연결한 전체 길이 약 3.6㎞, 축구장 11개를 합친 면적인 7만9194㎡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옥상정원이 조성돼 있다. 정부청사관리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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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2016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정부청사관리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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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청사 1층에 마련된 어린이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을 찾은 어린이와 시민들 모습. 부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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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무료 대여해주는 청사도 눈에 띈다. 2005년 개청 당시 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경기 용인시청은 지역 대표 예식장으로 자리매김했다. 3층 컨벤션홀은 주말마다 화려한 조명을 갖춘 무료 웨딩홀로 바뀐다. 꽃장식과 함께 화이트 톤의 소파가 놓인 신부 대기실도 마련된다. 웨딩홀엔 테이블보가 깔린 원형 테이블이 설치돼 고급 예식장 못지않다. 1,000명이 넘게 사용할 수 있는 직원식당과 주차공간은 일반 웨딩홀에선 따라오지 못할 장점으로 꼽힌다. 2007년 6월 첫 결혼식을 치른 이후 이달까지 총 521쌍이 이곳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정희 용인시 건강가정팀장은 “예식 비용이나 예식 시간에 부담을 느끼는 청년층, 다문화 예비 부부 등의 예약 신청이 많다”며 “예식장 운영을 중단한 코로나19 확산 때를 제외하면 연 평균 40쌍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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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는 2007년부터 청사 3층 컨벤션홀을 주말마다 예식장으로 꾸며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용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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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는 2007년부터 청사 3층 컨벤션홀을 주말마다 예식장으로 꾸며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용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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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청사가 대민서비스나 행정업무 중심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수요에 부합하는 복합공간이자 랜드마크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지만 개보수 등 공사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광주시는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며 청사 1층에 10억 원짜리 미디어아트 폭포 설치를 추진해 시민사회 단체의 반발을 샀다. 전 경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신희영 행정학 박사는 “요즘은 공공기관 단독이 아닌 지역공동체와 공동으로 주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인식이 받아들여지는 추세”라며 “끊임없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장치를 마련해 예산낭비 등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전주=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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