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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직설]원초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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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후 2개월에 브라질로 이민 간 여아가 있었다. 10대에 어머니를 잃고 가난한 이민자로 살았지만, 문학을 몹시 사랑했고 1943년 23세에 출간한 첫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로 포르투갈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포르투갈어에 강한 애착이 있었지만, 이국적 이름 탓에 명성을 얻은 후에도 브라질에서 이민자 작가로 여겨졌다. 키 큰 금발에 화려한 외모로도 주목받았지만, 수줍음 많고 예민한 성향으로 세간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평생 브라질의 버지니아 울프라 불렸지만, 울프의 자살을 용서할 수 없다며 작가에게 주어진 끔찍한 의무는 ‘끝까지’ 가는 것이라 믿었다. 난해한 언어와 추상적 서사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문학의 쓸모를 집요하게 고민했던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이야기다.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소설에 비해 그녀가 남긴 산문은 의외로 그렇지 않다. 저널리스트로도 일한 적 있는 리스펙토르의 칼럼을 모은 산문집 <세상의 발견>에 실린 글들은 진솔하고 소박한 일기에 가까워 보인다. “범죄는 보상이 없죠. 문학은 보상이 있나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말하고, “그러면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는 끝내 대답하지 못하며, “글쓰기는 저주”라고 서슴없이 적기도 한다. 얼핏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푸념처럼 들릴지 모르나, 여기에는 자신에게 분명한 느낌을 드러내는 가장 생생한 언어에 닿으려는 집념이 있다. 리스펙토르에게 글쓰기는 차라리 뼈와 살, 내장과 혈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1966년 침대에서 자는 사이 담뱃불로 인한 화재로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리스펙토르는 1977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주로 사고 이후의 글들이 모인 <세상의 발견> 곳곳에 꿈틀대는 감각, 그러니까 살아 있음에 대한 경이,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체험, 타오르는 꿈의 인식, 주변인들에 대한 신중한 애정에 대한 글쓰기는 그저 살아 있는 순간에 가장 온전한 형태로 육박하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태도 그 자체다. 그러므로 자신이 언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리스펙토르의 확신은 과장일 수 없다. “내가 한 일은 고작 내게 복종하면서 나아가는 일이었을 뿐.”

리스펙토르가 사망한 해 마지막으로 출간한 소설 <별의 시간>은 그 겸손한 복종의 기록이다. 브라질 북동부의 가난하고 비참한 타이피스트 마카베아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겐 버림받고 동료에겐 무시를 받으며 점쟁이에겐 연민을 받지만, 이렇게 요약된 줄거리는 <별의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 개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식하지조차 못하는 마카베아가 유난히 부끄러워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진실’이다. 거짓말은 차라리 예의 바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인지할 수도 없는 내밀한 접촉이므로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함부로 털어놓을 수 없다. 이러한 마카베아의 생각은 어쩌면 리스펙토르 문학의 가장 심원한 밑바닥을 이루는 원초적 감각이다.

“진실은 그 자체로 정확하고 분명하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도달하면 모호해”진다. 그러나 글쓰기란 그 비밀스러운 진실과 “모호하고 답답하게 남아 있는 감정들을 깊이 느껴보는 일”이다.

자신의 살아 있는 육체를 거치지 않은 선험적인 진실이 있다고 믿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환원하지 않는 문학. 그것은 글쓰기의 저주를 구원으로 바꾸는 비밀스러운 코드이자 언제고 음미하고 싶은 아름다운 언어의 껍질이다.

경향신문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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