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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김정일·고이즈미 만난 지 20년, 기시다 방북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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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2년 9월17일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맨 왼쪽) 당시 일본 총리가 백화원초대소에서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맨 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당시 관방 부장관이던 아베 신조 총리(왼쪽 셋째)가 김 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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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북일 정상회담이 20주년을 맞았다. ‘파벌 비자금’ 문제 등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일본 자민당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북을 위기 타개책 중 하나로 모색하고 있지만, 물밑 교섭마저 정체 상태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일본 언론들은 22일 2004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두 번째 북한을 방문한 지 20년이 됐다며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이 진전되지는 않고 있다고 짚었다.



2004년 5월 22일 고이즈미 총리는 두번째로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2년 전인 2002년 9월 17일 사상 처음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국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첫번째 정상회담 때 북한이 처음으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일본 내부에서는 납치 문제로 인해 여론이 오히려 나빠져 두번째 방북을 했던 것이다.



두번째 방북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북일 간) 국교정상화 실현이 크게 기대된다”고 밝혔고,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목적이고, 6자 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에 식량 25만t과 1천만달러어치 의약품을 전달하고, 대북제재법 시행을 보류한다는 ‘당근’을 꺼내 들었다. 북-일 수교 교섭이 다시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후 북-일 국교 정상화는 실현되지 않았고, 북-일 정상회담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최근엔 북-일 정상회담이 다시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5월 기시다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발언한 지 이틀 만에 북한 외무성이 “일본이 변한다면 (북일 정상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앞서 지난해 3월과 5월에는 북한과 일본 정부 관계자가 동남아 주요 도시에서 비밀 접촉을 통해 일본 정부 고위급 인사를 평양에 파견하는 방안도 논의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전했다. 지난 1월 일본 노토반도 지진 때는 김정은 위원장이 기시다 총리를 “각하”라고 부르는 이례적 위문 전보를 보내기도 했다. 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월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3월 25일에도 “최근에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수상은 또다른 경로를 통해 빠른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우리에게 전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루 만인 3월 26일 김 부부장은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며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문을 닫았다.



북-일 관계가 20년 동안 진전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납치 문제다. 고이즈미 총리 1차 방북 당시 관방 부장관으로 동행했던 아베 신조 총리는 납치 문제에 대한 강경론을 주도해 보수파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집권에 성공한 그는 △납치 문제 해결 없는 국교 정상화는 없고 △납치 피해자 전원이 생존해 있으며 △즉시 모두 돌려보내야 한다는 ‘3원칙’을 고수했다. 북한이 죽었다고 밝힌 이들이 사실은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니 돌려달라는 주장으로, 북한은 일본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이 기시다 총리의 만남 제안에 대해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다가 이후 싸늘한 말을 내놓은 이유 중 하나도 일본이 납치 문제에 대해 아베 정부 시절과 태도에 결정적 변화는 없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3월 25일 북-일 정상회담 관련해 “알 재간도 없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골몰한다면 수상의 구상이 인기 끌기에 불과하다는 평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일본이 정치적 용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북한이 요구하는 “정치적 용단”을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한, 북한이 최근 중국·러시아와 단단하게 결속하는 상황이라 일본과의 정상회담 ‘매력’이 떨어진 상태라는 분석도 일본 내에서 나온다.



고이즈미 방북 당시인 2000년대 초반 조지 부시 미국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꼽으며 압박했다. 오랫동안 북한을 지원해온 소련은 1991년 해체됐으며 새로 탄생한 러시아는 한국과 수교해 북한은 고립되고 있었다. 히지만, 최근엔 러시아와 북한 무기 거래 의혹이 이는 등 북한과 러시아 관계는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000년대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와 견줘 북한에 일본의 우선순위가 낮아졌다는 시각도 있다”고 짚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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