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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논단]인공지능(AI) 시대 '잊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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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청구권' 명확한 규정 없으면

AI 검색엔진 악용 가능성 무한

당연한 인권에 대한 대책 시급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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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성숙하지 못한 시절 무리한 언행으로 정치인의 길이 좌절된 일부 인사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변화와 개선의 동물이다. 과거는 때때로 과거로 묻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해 우리의 지워진 기억은 이제 언제든 다시 소환되고 과거 아닌 현재가 된다. 인터넷 시대의 검색은 개인의 검색 능력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AI에 의한 검색은 그 한계마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노출의 시대에 우리에겐 아직 다소 생소한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관심이 대두된다. 잊힐 권리란 기관 및 서비스 공급자가 저장한 개인 관련 정보를 해당 개인이 자신의 요청으로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를 ‘삭제 청구권’이라 하며 이 권리는 이미 유럽연합(EU)에서는 2014년 확립되고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GDPR)에 따라 법제화됐다.

특히 이 법은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의 검색 페이지에 적용돼 ‘데이터 주체’인 개인은 특정 링크 등 자신의 정보를 가능한 한도 내에서 삭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사실 검색 엔진의 악용 가능성은 무한하다. 일례로 문서로 공개된 법원의 판결 기록을 모두 디지털화해 특정 사이트에 공개하고 해당 개인에게 삭제를 위해서는 특정한 요금을 요구하는 등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온갖 비도덕적 사업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좋든 나쁘든 시장의 이윤추구에 대한 욕망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이와 AI가 결합할 경우 그 피해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EU 밖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EU 내 검색 결과에서 특정 개인 정보를 삭제하도록 요구할 수 있더라도, EU 지역 외에서는 해당 검색 결과에 접근이 여전히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잊힐 권리’는 아직 법제화되지는 않았지만 피해 발생 시 법적 소송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EU의 GDPR처럼 이 권리가 ‘삭제 청구권’을 통해 적용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규정이 없으면 사실 권리행사가 쉽지 않고 막대한 소송비용이 부담될 수 있다. 특히 삭제 요청 시 조직이나 서비스 공급자가 삭제 요청에 대한 응답을 의도적으로 늦추면 실제 피해는 그대로 겪게 된다. 반면 GDPR에서는 삭제 요청에 대한 기관의 응답 기한을 1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개인 정보라고 해도 해당 정보 공개가 법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경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 학술적 목적 등 연구를 위한 공익적 보관에 합당하는 경우 등 정보의 유지와 공개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이러한 알권리 등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과 이에 반대돼 데이터 수집을 금지하고 삭제를 요구할 권리는 당사자 간의 치열한 다툼이 될 수 있다.

특히 명확한 권리에 대한 규정이 없으면 각 개인의 직간접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이러한 다툼에는 법적 소송 등 경제적 비용이 수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경제학 이론의 오래된 지혜가 다시 조명된다. 바로 법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의 ‘코즈 정리(Coase Theorem)’다. 그는 1991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정리는 권리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만으로도 이해 상충의 많은 경제문제가 시장에서 스스로 해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고 실제 많은 현실에서 적용되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AI 시대를 맞이해 기대도 많지만 ‘잊힐 권리’ 등 개인 정보 보호라는 당연한 인권에 대한 고민도 시급한 시점이다.
김규일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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