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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韓 배당 성향 26%…대만 절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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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타’만 횡행…세금은 여차하면 폭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배당 투자는 이미 보편화됐다. 배당주에 투자해 은퇴 후 배당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가 상당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배당 투자가 아직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대주주부터 일반주주까지 전체적으로 배당에 대한 인식 자체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평이다. 제도적으로도 기업이 배당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매경이코노미

최근 정부는 배당 확대 등 기업의 주주환원 강화를 촉진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 모습. (윤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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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몫 챙기려는 지배주주

배당은 ‘자율’ 아닌 ‘의무’

배당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배당 관련 제도뿐 아니라 회사의 주주 구성이나 영위하는 사업 특성, 글로벌 경제 환경 등이 영향을 준다.

그중 우리나라에서는 경영과 소유가 일치하는 기업 구조가 배당 확대를 제한하는 첫째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 주인은 대주주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 기업 특성상, 배당 확대가 전체 주주보다는 지배주주에게 유리한지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다. 만약 배당 확대가 대주주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굳이 배당을 많이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대주주가 배당을 받기보다 벌어들인 현금을 내부에 유보해 회사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이 더 낫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 굳이 배당이 아니라도 급여를 올리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대주주가 현금을 확보할 방법은 많다.

여기서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대주주 입장에서는 이익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회사 주인은 전체주주가 아니라 지배주주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우리나라 배당 문화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회사 주인은 일부 지배주주가 아닌 전체주주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주주에게 나눠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기업은 배당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재량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선진국에서는 배당을 주주로부터 조달받은 자본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주환원율은 해외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10년 평균 국내 상장사 배당 성향은 26%로 집계됐다. 미국(42%), 영국(129%), 일본(36%) 등 선진국은 물론 대만(55%), 중국(31%), 인도(39%) 등 주요 신흥국과 비교해도 뒤처진다. 코스피 상장사 782곳 중 2020~2022년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기업도 190곳(24%)이나 된다.

특히 자본 시장이 발달한 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미국에는 주주친화적인 기업이 많아 수익을 회사에 쌓아놓기보다 주주에게 나눠 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50년 이상 꾸준히 배당한 기업군인 ‘배당킹’, 25년 이상 배당한 집단인 ‘배당귀족’ 등 배당 투자자를 위한 배당 계급표도 존재한다.

워런 버핏의 투자 종목으로 유명한 코카콜라를 비롯해 존슨앤드존슨, 3M 등이 배당킹에 속하는 종목이다. 투자자들은 이 표를 보고 기업의 배당 성향이나 배당금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또, 미국 기업은 연간 보고서에 자사의 주주환원 정책을 투명하게 공시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5년간 연간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액 추이를 그래프 형태로 제공한다.

이와 비교하면 여전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 정책은 투자자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 5월 9일 글로벌 금융 정보 제공 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는 ‘한국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보고서를 통해 “여러 측면에서 글로벌 표준에 뒤처진 한국 배당 관행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얼마나 어느 정도로 배당할지 예측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을 꼬집어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실제 코스피200 기업 중 올해 4월 기준 명확한 배당 정책을 가진 기업 비중은 55%(110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니케이225에서 이 비중이 76%(170곳)인 것과 비교된다.

연중 배당 횟수도 차이가 크다. 지난해 회계연도 기준 니케이225 기업 가운데 88%는 중간배당을 지급한다. 반면 코스피200에서는 불과 8%만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분기 배당(7%)까지 합해도 15%에 그친다. 최근 국내 기업도 분기 배당을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결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배당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선진국에서는 기업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자본주의가 정착된 상태”라며 “기업이 배당 정책을 수립할 때 전체주주에게 이익이 되느냐를 우선적으로 검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체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이를 투자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가가 올라가고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라며 “우리나라도 배당 확대가 대주주에게 손해가 아니라는 인식을 줄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돼야 장기적으로 배당 문화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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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타 노리는 일반주주

기관 적극적 목소리 내야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배당 투자가 어려운 이유를 지배주주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단타 위주 전략을 구사하는 일반주주 투자 성향도 우리나라에서 배당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배당 투자란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관 투자자조차 단기 투자가 보편화됐다는 평가다.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배당수익보다는 매매차익이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 생각이다. 투자자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배당이 이뤄진다면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하겠지만, 매매차익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수익률보다 배당수익률이 낮으니 배당 투자에 대한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배당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배당수익률이 정기예금 금리 이상으로 유지되도록 배당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한 편”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배당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3년 이상 장기 보유 투자자에 대한 분리과세는 물론이고 배당 세율에 대한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주주를 제외한 5년 이상 장기 보유 지분에 대한 차등의결권도 검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일반주주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기관 투자자 역할이 강조된다. 그동안은 기관 투자자도 배당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배당 확대 요구도 소극적이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다수 기업 지분은 기관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기관들이 배당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아 배당 확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행동주의펀드를 중심으로 조금씩 배당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국민연금 등 국내 주요 기관 투자자들이 주주환원에 대한 실효적인 대화와 관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당 늘리기엔 부족한 유인

배당 문화 정착해야 ‘밸류업’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배당 투자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제도적인 한계가 명확했다는 내용이 꼽힌다. 선진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의 세금이 투자자 부담을 키운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높은 배당을 오히려 꺼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배당소득과 이자 등 연간 2000만원 이상의 금융소득이 발생하는 경우, 49.5%에 달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내야 한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면 온갖 절세 혜택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서도 탈락해 가계 부담이 가중된다. 미국처럼 은퇴 후 배당금으로만 생활하기 오히려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와 제도상 차이가 크다. 미국에서는 배당소득세가 15%로 분리과세되며, 영국과 홍콩은 배당소득세가 아예 없다.

일본은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 방식이 다양한 편이다. 다른 소득과 합산하는 종합과세와 배당만 따로 계산하는 분리과세 중 각자 유리한 방식을 골라 세금을 납부하면 된다. 일본 은퇴자 대부분은 주식·배당이익과 손실을 전부 통합해 계산하는 신고분리과세 방식을 선택한다. 배당을 받았더라도 주식 투자로 손실을 입었다면 그만큼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줄어드는 식이다. 또,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분리과세 소득은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에서도 빠진다는 사실이다. 배당으로 2000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할 경우, 건강보험료 부담까지 더해지는 우리나라 제도와 상반된다.

다만 이런 과세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는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결하기 용이한 과제는 아니다. 특히 여소야대 국면인 우리나라 정치 지형상 법을 개정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세워 기업의 자발적인 주주환원 강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야당이 절반이 넘는 국회에서 정부 계획대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국 정치권을 비롯해 기업과 투자자 등 자본 시장 참여자 모두가 배당 투자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고성장기에는 기업들이 주주환원에 자본을 투입하지 않고 성장에 보다 집중했다”며 “지금처럼 저성장기에는 다른 선진국처럼 우리나라 기업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 어렵기 때문에 배당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세법 개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며 “결국 기업이 주주환원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하고 투자자들도 전략의 다양성 측면에서 배당 투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 등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일본 사례를 충분히 살펴보고 기업에 충분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일본 증시의 밸류업 프로그램 이후 높은 수익률을 경험한 해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많다”며 “엔저 효과와 외교를 통해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준 일본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기업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려면 그만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진행한 리서치센터장 간담회에서도 기업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정치적으로 풀어나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더욱 입체적인 방법으로 기업 배당 확대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0호 (2024.05.22~2024.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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