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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해외직구 금지’ 정책은 왜 소비자들을 화나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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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직구 대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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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을 받지 않은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차단하려다 사흘 만에 철회하는 소동을 빚은 배경에는 정부의 해외직구에 대한 ‘오판’이 있었다. 해외직구는 이미 젊은층을 넘어 상당수 국민들의 주요 소비 채널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데, 정부가 이를 간과하고 무리한 계획을 밀어붙여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21일 통계청의 온라인 해외직구 동향 자료를 보면, 2018년까지만 해도 2조원대이던 해외직구 액수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해 지난해 처음으로 6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동기보다도 9.4% 증가한 1조6476억원을 기록해,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올해 해외직구액은 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21년 관세청은 20~50대 중 해외직구 이용 인원이 1308만명으로 해당 연령대 전체 인구의 43.2%에 이른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e커머스의 사용자 수가 쿠팡에 이어 2~3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 시점에 ‘직구족’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구금지 조치가 피부에 와닿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광범위하단 뜻이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품목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직구 품목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의류 및 패션상품(45.7%)이고, 음식료품(22.2%), 가전·전자·통신기기(6.3%), 생활·자동차용품(6.2%), 화장품(4.8%), 스포츠·레저용품(3.8%) 순이다. 전자제품 등 고가 품목을 구매할 때는 해외와 국내 판매가를 비교해 보고 가격 차이가 크면 직구를 선택하는 소비 패턴도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해 제품을 타깃으로 한 규제가 아니라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생활화학제품 등 80종을 뭉뚱그려 ‘KC 인증을 받지 않으면 직구를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소비자들은 ‘저렴한 쇼핑채널이 차단된다’고 여기게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미국 플랫폼 등을 활용해 유아차와 전자제품 등을 직구해왔던 직장인 A씨(35)는 “유해성이 큰 제품이 있다고 판단했으면 해당 제품을 차단할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할 텐데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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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도 정부 대책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올해 1분기 전자상거래를 통해 국내에 반입된 통관 물량은 4133만건에 달한다. 하루에 46만건이 들어오는 꼴이라 일일이 검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전문의약품 등 통신판매가 금지된 제품들이 버젓이 해외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것이 현실이다. e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가 전혀 제시한 바가 없어서 업계에서는 처음부터 대책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수백만원대의 비용이 들어가는 KC 인증을 해외 영세 판매자에게 강제할 방법도 사실상 없었다.

일각에서는 위해 제품의 무분별한 유통 등을 단속할 필요성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섣부른 대책으로 혼란을 자초해 중국발 e커머스에 대한 규제 논의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중국 e커머스에서 판매되는 초저가 어린이용품과 장신구 등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국내 유통 소상공인과 중소 제조업체들에만 안전 규제가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후 규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관에서 위해 제품을 모두 적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위해 제품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해당 사업자에게 책임을 포괄적으로 물을 수 있는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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