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극심한 혼란” vs “변화 적을 것”… 이란 대통령 사망, 중동 정세 영향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21년 취임…이스라엘 보복 공격 ‘강경파’

헬기 추락해 대통령·외무장관 등 9명 사망

하메네이 아들, 최고지도자 세습 가능성도

‘이란의 2인자, 차기 최고지도자 유력 후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 등으로 불리던 에브라힘 라이시(63)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지역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세계일보

20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에 조기가 걸려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마스 등 지원하며 미·이스라엘에 맞서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20일(현지시간) 오전 모하마드 모크베르 수석부통령(68)이 주재한 긴급 내각회의 후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오후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 주(州)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뒤 악천후 속에서 타브리즈의 정유공장 현장으로 향하던 중 변을 당했다.

헬기는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가까운 디즈마르 산악지대에 추락했으며, 동승했던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 타브리즈 지역 금요대예배 이맘(예배인도자) 아야톨라 모하마드 알리 알레하솀, 말리크 라흐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 조종사, 경호원 등 9명 전원이 숨졌다. 이들의 시신은 20일 오전 수습됐다.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이자 검사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은 2021년 8월 이란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메네이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970년 팔레비 왕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이슬람 혁명 2년 뒤인 1981년 검사 생활을 시작해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에는 반체제 인사 숙청을 주도했다.

세계일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왼쪽)이 19일(현지시간) 동아제르바이잔주 바르즈건 지역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타브리즈로 돌아오기 위해 헬기에 탑승해 있다.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 등을 태운 헬기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산악 지대에 추락했다. 이란 국영TV IRINN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임기 2년 차인 2022년 ‘히잡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자 유혈 진압했다.

라이시 정권은 가자전쟁 국면에서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을 지원하면서 간접적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왔다. 직접 개입을 피하던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영사관을 공습해 자국군 고위 지휘관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라이시 대통령은 강경파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

하메네이는 이날 성명에서 향후 닷새간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고 모크베르 수석부통령이 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 선출 전까지 행정부 수반을 대행한다고 밝혔다.

이란 부통령 12명 중 가장 선임인 모크베르 수석부통령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으로 평가된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유고 시 50일 이내 보궐선거를 통해 직선제로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다. ISNA 통신은 오는 7월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세계일보

20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63) 이란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가 추락한 사고 현장.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권력구도에 어떤 변화? 세계 각국 예의주시

라이시 대통령의 유고로 미국,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각국이 앞으로 닥칠 중동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고가 이란 내부에 불러올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이란 국장은 NYT에 “이 상황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정통성 위기에 처해있고 역내에서 이스라엘 및 미국과 맞서고 있는 이란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의 정치 권력구도 변화에 주목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85세의 고령인 탓에 최고 권력 교체에 대비하던 이란이 계승 1순위로 꼽히던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특히 라이시의 사망으로 하메네이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를 이어받는 ‘세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며, 많은 이슬람 성직자들이 이를 이란 혁명 원칙에 반한다고 반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세계일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이란에서 대통령의 부재로 정책의 주요 방향이 틀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라이시 대통령이나 (헬기에 동승한)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이 사망하거나 무력화되더라도 핵 프로그램이나 가자전쟁에 대한 우려 등 뜨거운 지정학적 이슈와 관련한 이란의 입장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 포스트 역시 전문가들을 인용해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적대 관계, 이란의 하마스 및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 핵무기 생산 추진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이날 TV 연설을 통해 “이번 사고가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