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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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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헬기 추락 사망… 중동 정세 격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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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북서부 산간 지역에서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실종된 에브라힘 라이시(64) 이란 대통령이 20일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이란 정부는 20일 헬기가 추락한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서 군경이 무인기(드론) 등을 동원해 15시간 수색 작업을 벌인 끝에 헬기 잔해와 시신을 확인,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이날 5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라이시와 함께 탑승했던 동승자 여덟 명 또한 모두 사망했음이 확인됐다. 헬기가 추락한 디즈마르 지역은 평균 고도가 2000m가 넘는 산악·고원 지대로 평소에도 악천후와 험난한 지형으로 악명이 높다. 라이시를 태운 헬기는 이날 안개가 짙게 낀 상황에서 비행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 중엔 이란 외교의 사령탑인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 장관과 말리크 라흐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란 대통령이 임기 중 목숨을 잃은 것은 1981년 8월 취임 28일 만에 암살된 모함마드 알리 라자이 대통령 이후 43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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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2021년 8월 이란의 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내각을 이끌어온 라이시는 1979년 친미(親美)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루홀라 호메이니와 현 알리 하메네이에 이어 이란의 역대 세 번째 최고 지도자(권력서열 1위)에 오를 것으로 지목돼 왔던 인물이다. 하메네이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미국 등 서방과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 등 중동의 이슬람 무장 단체를 후원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하며 서방과 각을 세워온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안 그래도 불안한 중동 정세엔 불확실성이 더 커지게 됐다.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이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빠른 사태 수습과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국가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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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에브라임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탄 헬기가 추락한 이란 북서부 산악지대 사고현장에서 이란 적신월사 구조대원들이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해 옮기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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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가 추락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19일 국제사회의 시선은 필사적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인 이란 북서부 산간 지대로 쏠렸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오전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역에 있는 키즈칼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후, 헬리콥터를 타고 이란 동(東)아제르바이잔주 타브리즈로 이동하다 목적지를 약 80㎞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실종됐다.

이란 정부는 타브리즈에 비상 대책 본부를 차리고, 군과 경찰의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구조에 나섰다. 모하메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 지시로 이란 정예군인 혁명수비대도 투입되는 등 이란 전역에서 차출된 80여 구조팀이 추락한 헬기와 생존자 수색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밤이 되며 안개가 짙어지고 비가 눈으로 바뀌는 등 기상 조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무선 통신마저 방해를 받으면서 구조 작업이 큰 지장을 겪었다. 결국 구조대가 적외선카메라를 장착한 무인기로 주변 지역을 샅샅이 뒤진 끝에 20일 새벽에야 추락한 헬기를 발견,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모흐센 만수리 이란 부통령은 이날 오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가 전소된 채 발견됐고, 안타깝게도 탑승자 전원이 순교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도 그 직후 공식 성명으로 이를 확인했다. 이란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는 합동 구조대를 대표해 “오전 5시(한국 시각 20일 오전 11시)경 구조대가 추락 현장에 도착해 순교자들의 시신을 확인했다”며 “현장에서 수습한 시신들을 타브리즈로 이송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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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에서 20일(현지 시각) 고(故)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담은 신문이 펼쳐진 모습. /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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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시 대통령의 헬기는 험난한 산악 지대를 지날 당시 짙은 안개와 비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메흐르통신에 따르면, 대통령 일행은 당초 기상 악화를 우려해 차를 타고 육로로 타브리즈를 향하려다가 빠듯한 일정 때문에 헬기 탑승을 결정했다고 한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타브리즈의 한 지역 행사에 참석한 뒤 다시 수도 테헤란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이번 사고의 원인 중의 하나로 악천후 외에 노후한 헬기 기종 문제가 꼽힌다. 이날 추락한 헬기는 미국산 ‘벨-212′로 1968년 처음 생산돼 1998년 생산이 중단된 노후 기종이다. 같은 외형의 단발 엔진 자매기 ‘UH-1 휴이’가 미군 등 세계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유명해졌다. AP와 CNN은 벨-212가 친미 팔레비 왕정 시절인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이란으로 인도됐고, 1979년 미국과 이란 단교의 여파로 부품 조달 루트가 끊기면서 유지·보수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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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아라스주 키즈 칼라시 댐 준공식 후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이륙하는 모습. 이 헬기는 미국산 헬기 BELL-212기종으로 알려졌다./IRNA/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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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현지 매체는 “라이시 대통령 일행은 이날 헬기 총 세 대를 이용했다”며 “사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헬기 두 대는 무사히 타브리즈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정부 요인들이 항공기를 이용해 이동할 경우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여러 대에 분산시켜 태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날은 외무 장관과 주지사 등이 모두 대통령과 같은 헬기를 탔고 결국 함께 변을 당했다. 이란 권력 서열 2위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이란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국제사회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이란과 중동, 나아가 세계 정세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19일 “조지아주를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사고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도 뒤이어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사고 보도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EU 회원국 및 파트너국들과 함께 상황을 긴밀히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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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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