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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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장은 20일 페이스북에 “안전과 기업 보호는 직구 이용자의 일부 불편을 감안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며 “정책 전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여당 중진으로서의 처신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썼다. 정부의 해외 직구 규제와 관련해 정부 정책의 필요성을 옹호하면서 이를 비판한 당권 주자들에겐 각을 세운 것이다. 오 시장이 최근 공개 메시지에서 ‘여당 중진’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특정 인사를 비판한 건 이례적이었다.
오 시장이 언급한 여당 중진은 직구 규제를 비판한 나경원 당선인과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앞서 “취지는 공감하지만, 졸속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나경원),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일방적으로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유승민), “적용 방식이 모호해 과도한 규제가 될 것”(한동훈)이라며 일제히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16일 정부는 ▶어린이용 ▶전기·생활 ▶생활화학 제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해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 등 안전 확인 절차가 없으면 반입을 금지하겠다고 예고했다.
오 시장의 비판은 유 전 의원과의 설전으로 이어졌다. 유 전 의원이 이날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해 소비자들이 계속 피해를 봐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즉각 되받아치자 오 시장도 2시간 만에 다시 “유 전 의원이 의도를 곡해했다”며 “소비자 선택권, 국민 안전, 자국 기업 보호라는 세 가지 가치가 충돌하고 있어서 본질적으로 고민이 깊은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에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유 전 의원을 겨냥해 “여당 의원이라면 페북보다 정부에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이 우선이다. ‘야당보다 더한 여당’은 자제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유 의원은 이에 4시간 만에 “‘야당보다 더한 여당’이란 감정적 언사러 프레임을 바꾸려 하지마라. 시대 착오적인 ‘입틀막'”이라며 “사흘만에 철회한 정부와 대통령실을 비판하라”고 재반박했다.
차준홍 기자 |
오 시장의 공세 이후 여권에선 “차기 경쟁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7월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엔 나 당선인과 유 전 의원에 4·10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한 전 위원장까지 등판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목격담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택 주변이나 도서관, 식당 등에서 제3자에 의해 찍힌 사진과 목격담을 통해 정치권에서 회자되던 한 전 위원장이 지난 19일 직구 규제 비판을 고리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차기 당권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묻는 백서 발간 문제를 둘러싸고 이미 친한계와 친윤계가 대립하면서 당내 계파 갈등도 커지고 있다.
당권 도전 여부에 신중한 입장인 나 당선인도 발걸음은 이미 당권 도전자의 모습이다. 그는 20일 국내 최대 여성 전용 커뮤니티에서 주한미군 남성의 나체 사진과 신상이 공유된 일명 ‘여성판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N번방 가해자들과) ‘동일한 잣대의 엄벌’, 이것이 핵심”이라고 적었다. 전날 개혁신당 대표로 선출된 허은아 전 의원의 게시글을 공유하며 “허 대표의 시각에 100% 동의한다”며 밝힌 입장이었다. 당에선 “여성 정치인이자 당권 주자로서 여성 문제뿐 아니라 남성 문제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왔다.
22대 국회에 다시 등원하는 나 당선인은 최근 공개 행보를 잇달아 하고 있다. 그가 16일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저출산과 연금개혁’ 세미나를 주최하자 현역의원과 당선인 등 30여명이 행사에 참석해 세를 과시했다. 14일엔 서울 당협위원장 만찬을 주재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팬클럽 미팅을 하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고, 대학가를 돌며 ‘보수의 가치’를 강연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도 총선 패배 이후 ‘보수 혁신’을 기치로 세미나를 잇달아 개최하며 “수도권 중심 정당으로의 개혁”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당권 주자이자 잠재적 대권 주자가 될 수 있는 경쟁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자 오 시장의 정치적 행보도 최근 부쩍 늘었다. 선거 패배 책임에서 빗겨선 오 시장은 수직적인 당정 관계, 한 전 위원장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 비판 등 윤석열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을 가리지 않고 선거 책임을 묻고 있다.
9일 아랍에미리트(UAE) 현지 출장 중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심판론’ 맞불은 피했어야 하는 전략”이라며 “‘대통령 눈치 보는 당’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총선 이후 ‘식사 정치’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9~22일 국민의힘 서울 낙선자를 권역별로 초청해 위로한 데 이어 20일엔 10명의 국민의힘 비례대표 당선인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오 시장은 “한쪽으로 (시각이) 치우치는 걸 조심해야 한다”며 당의 외연 확장을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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