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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눈빛과 손짓만으로 진심 전달…“수어는 중요한 소통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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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40만명 시대
인기 강의 10분만에 마감
수어통역 자격증 취득 긴줄
“수어로 전문성 갖고 재취업”
교육 인프라는 여전히 열악


말 한마디 오가지 않지만 형형한 눈빛으로 배움의 열기를 내뿜고 있는 곳이 있다.

최근 취재진이 찾은 2009년 문을 연 서울수어전문교육원은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모든 강의실이 수강생들로 꽉 차 있었다. 2009년 4월 국내 최초로 개관한 이곳은 수어를 배울 수 있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전문 교육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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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매일경제가 방문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수강생들이 농인 강사에게 수어를 배우고 있다. [사진=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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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수어 초급반 기본과정 강좌는 모두 농인 강사가 수어를 수어로 가르치고 있어 음성언어를 쓸 일이 없다. 대신 수어를 처음 접하는 수강생들이 강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하는 어휘의 뜻을 모니터에 이미지로 띄우며 수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날 강의에서는 ‘앉다’ ,‘무릎을 꿇다’, ‘눕다’, ‘일어나다’ 등의 어휘를 수어로 직접 배웠다. 가령 ‘눕다’라는 한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왼쪽 손바닥을 펴고 오른쪽 손을 검지와 중지 손가락만 펴서 왼쪽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수어는 주변에서 점차 필수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등록장애인현황’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25만344명이었던 국내 청각장애인 숫자는 2021년 40만명을 넘어섰고, 2022년 기준 42만5224명까지 늘었다. 2022년 새로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들 가운데 청각장애인이 3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다보니 수어통역사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실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는 농인 강사가 진행하는 통역사 준비 과정인 ‘수어번역’ 강좌인데, 매번 강의가 10분만에 마감되고 있다. 교육원의 누적 수강인원 역시 올해 2월 기준 9만명을 돌파했다.

수어통역사를 꿈꾼다는 고급반 수강자 정주아 씨(50)는 “수어를 배워 재취업을 생각하고 있다”며 “지난해 성동구수어통역센터에서 농인의 근로를 도와주는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했는데, 앞으로 수어통역사 자격증까지 따서 더 전문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교육원 관계자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다양한 수어 강의를 들으며 학교처럼 다니는 수강생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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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청각장애인 수는 2021년 40만명을 넘어섰다. 이와 함께 수어통역사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진=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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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배우지망생 등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도 최근 수어교육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공연업체에서 무용팀을 운영 중인 김영찬 씨(44)는 지난해 8월께 수어교육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무용팀에서 농인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들이 무용팀에 본격 합류하면서 소통을 위한 수어 학습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어는 단어, 몸의 형태, 표정까지 같이 익혀야 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며 “농인과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는 정도가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어를 배울 수 있는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전국에 수어교육원이 있는 지역은 단 4곳(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2월 ‘제2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하고 한국수어교육원을 17곳으로 늘리며 공공수어 통역 지원을 연평균 440회에서 2000회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선희 서울수어전문교육원 실장은 “수어를 사용하는 수어 인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서울시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 13년째 근무 중인 농인 장민영 씨(42)는 “카페나 약국을 방문했을 때 농인임을 알아채고 수어로 소통해주시는 분이 있는데 그럴 때 마음이 편하고 재방문을 생각하게 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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