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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국수 먹고 배 두들기며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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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구두쇠氏 혼밥기행]

서울 장안동 ‘국수집’의 고기국수

조선일보

잘 삶은 우둔살을 푸짐하게 올린 장안동 ‘국수집’의 고기국수. 1만원이 훌쩍 넘는 유명 식당의 소고기 국밥이나 해장국보다도 고기 양이 더 많아 보인다. 이 집에선 곱빼기를 주문해도 보통과 같은 8000원을 받는다. /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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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호(屋號)는 두쇠씨가 식당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였다. 너무 요란하거나 유행 따라간 이름의 밥집은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이를테면 치킨집이 ‘짱맛닭컴’이면 그냥 지나쳤고 ‘부부통닭’이면 슬쩍 출입문을 열어보는 식이었다.

이 방법이 늘 통하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그냥밥집’이란 식당에서 백반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냥 밥집이었다. ‘와글와글족발’이란 오글거리는 이름의 식당이 손꼽히는 족발집이라기에 미심쩍어 했지만 그 맛이 출중해 감탄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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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장안동 국수집’으로 검색해야 위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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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동은 서울의 별 특색 없는 동네 중 하나다. 중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시장으로 이름났을 뿐, 그 밖에 무엇이 있는지 두쇠씨는 알지 못했다. 이 일대는 오랫동안 장안평이라고 불렸는데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이 생기면서 장한평으로 바뀌었다. 중랑천 옛 이름인 한천 옆 긴 평야가 장한평이었다는데 행정구역상 장안동도 여전히 있었다.

두쇠씨 자동차가 길에서 퍼져 장안동 배터리 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기름때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주변을 보며 이런 동네에 맛집이 많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두쇠씨가 점심을 해결하러 찾아간 곳은 자동차 시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국수집’이었다. 두쇠씨와 입맛이 어슷비슷한 사람 블로그에서 발견한 곳이었다. 인터넷에서 ‘장안동 국수집’으로 검색해야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옥호가 두쇠씨 마음에 꼭 들었다.

깔끔한 간판과 실내를 보는 순간 두쇠씨 생각이 흔들렸다. 젊은 사람들이 노포 흉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또 다른 최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저희 집은 어머니 혼자 운영하는 사랑방 같은 점포입니다”로 시작한 안내문은 최근 손님이 부쩍 늘어났으며 “조금 느리고 대응이 미숙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 맺고 있었다. 아들이나 딸이 쓴 글일 텐데 맞춤법이며 문맥이 글 써본 사람 솜씨였다.

모자 또는 모녀가 운영하는 집인가 했더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이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이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줄곧 손님을 대하는 걸로 보아 주인인 듯했다. 4인용 식탁이 세 개, 2인용이 세 개 놓인 작은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때였지만 만석이었고 여럿이 온 젊은 사람들과 혼자 온 노인들이 두루 섞여 있었다.

점심 메뉴는 국수만 여섯 가지였는데 여느 국숫집과는 달리 고기국수가 있었다. 흔히 고기국수라고 하면 제주도의 돔베고기 넣은 돼지 수육 국수를 말하지만, 이 집 고기국수는 소고기 국물에 소고기를 올린 국수였다. 그 밖에 어묵국수·비빔국수·멸치국수·콩국수·열무국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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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국수가 나왔을 때 두쇠씨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냉면 대접 가득한 소면 위에 소고기 고명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족히 왕갈비 두 대는 잘라 넣은 듯한 양이었다. 그 외엔 잘게 썬 파가 있을 뿐 모양을 내려는 고명은 따로 없었다. 이런 국수가 8000원인데 곱빼기에도 돈을 더 받지 않는다고 하니 요즘 매우 보기 드문 식당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고기는 소스에 찍어 먹고 국수는 소금·후추 넣어가며 간 맞춰 먹으라”고 했다. 국물은 설렁탕과 비슷했고 찬물에 헹군 소면 때문인지 뜨겁지는 않았다. 고기는 양지머리처럼 기름이 거의 없었지만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고기가 쉽게 부서져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했다. 설렁탕 국물에 고기와 국수를 그득 담아 먹는 형국이었다. 그릇에 깔린 고기를 훑어 먹느라 두쇠씨는 국물까지 싹 비웠다.

고기는 우둔살이라고 했다. 장조림이나 육포, 잡채에 주로 쓰이는 우둔살을 국수와 함께 내는 건 주인아주머니가 개발한 메뉴라며 “오랫동안 잘 삶는 게 요령”이라고 했다. 지금 자리에서 3년쯤 장사했다는 걸 보니 다른 곳에서 다른 음식을 한 것 같았다.

이 집 고기국수는 3년 전에도 8000원이었다고 한다. 두쇠씨는 지난 3년간 미친듯이 값을 올리는 바람에 괘씸해서 발을 끊은 몇몇 국숫집을 떠올리며 잇새에 낀 고기를 이쑤시개로 빼냈다. 꼬리곰탕이라도 먹은 양 배가 두둑했다.

[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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