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분리장벽 인근에서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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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반대와 미국의 경고에도 가자지구 ‘최후의 피란처’ 라파에 대한 지상 작전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6일(현지시간) 라파 일대에 “추가 병력이 진입할 것”이라며 “작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라파 지역에서 군 지휘관들을 만난 뒤 “우리는 하마스를 지치게 만들고 있다”면서 “라파에서 목표물 수백개를 이미 공격했고, 이 같은 활동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라파에서의 전투가 이번 전쟁의 많은 것들을 결정할 전투가 될 것”이라며 대대적인 공격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지난 7일 탱크를 동원해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국경검문소를 장악한 데 이어, 최근에는 라파의 주거 지역까지 밀고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라파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벌일 경우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개 경고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지자, 이스라엘은 라파 동쪽에서만 제한 작전을 벌이는 등 이제껏 전면 공격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스라엘이 라파 중심부를 향해 진군하며 전면전 채비에 속도를 내는 상황은 위성 사진을 통해서도 포착됐다. 상업용 위성회사인 플래닛랩스가 전날 촬영한 사진을 보면, 이스라엘군은 라파 동쪽에서 살라알라딘 도로를 통해 중심부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 진군 경로를 따라 무너진 건물 잔해가 곳곳에서 포착되는 등 지난 5일 촬영된 사진에 비해 피해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이스라엘군의 지상 공격이 임박한 가운데 라파에서 대피한 피란민들이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의 해안가에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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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경고에도 전면전 강행 예고…이집트 대통령 “이스라엘 망상” 작심 비판
이스라엘이 라파 일대에 지상군을 투입한 후 사실상 유일한 구호 통로인 라파 검문소가 폐쇄돼 가자지구에는 수일째 구호품 공급이 끊긴 상태다. 국경 너머 이집트에는 수백대의 구호트럭이 수일째 대기 중이다. 가자지구 바깥에서 시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부상자들의 이송도 중단됐다.
한 이스라엘 관리는 이번 작전의 주요 목표가 하마스가 수년간 무기 밀수 통로로 활용해온 이집트와 가자 사이 땅굴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뒤 수십여 년간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라파에 대한 대대적인 지상전은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이스라엘군의 라파 진입이 “지금껏 우리와 관계를 맺고 우리를 돕기 위해 노력해온 이집트와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을 중재해온 이집트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휴전 노력을 계속 회피하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압델 피타 엘시시 대통령은 이날 바레인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하기 위해 라파를 이용하고 있다며 “군사적 해법으로 안보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두 국가는 전날에는 구호품 이송 중단으로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을 두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쟁 전 인구 27만5000여명이던 라파에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해 가자지구 전역에서 몰려온 140만명이 피란 생활을 해왔다. 이는 가자지구 전체 인구(230만명)의 절반을 넘는 수치로, 국제사회는 라파에서 지상전을 강행할 경우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해 왔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6일 이스라엘군이 라파 동부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긴급 대피 명령을 내린 후 약 일주일간 라파에서 6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민간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이스라엘군이 라파에 지상군을 투입하기 전인 지난 4일 피란민 텐트로 가득했던 라파 중심부(위 사진)의 모습과 달리 15일 피란민 텐트 상당수가 철거됐다. 맥사테크놀로지/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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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대원, 이미 북쪽으로 도망”…공격 명분 논란도
이스라엘은 라파가 하마스 세력의 ‘최후의 보루’라며 공격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하마스 대원 상당수가 라파에서 도주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당국자 4명은 최근 며칠간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라파에서 도주, 가자지구 북부로 향했다고 NYT에 말했다. 이스라엘이 ‘제거 1순위’로 꼽는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도 현재 라파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스라엘이 내세운 공격 명분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군이 신와르 등 하마스 핵심 지도자들이 라파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마스 몰살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유엔 최고 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 중단을 명령해 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소와 관련해 이틀간의 심리를 시작했다. 남아공 측 변호인단은 첫날 변론에서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서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괴하려는 ‘엔드게임’의 일부”라며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 중단을 즉시 명령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남아공이 본안 판결 전 일종의 긴급 명령인 임시조치 명령을 내려달라고 ICJ에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임시 명령은 법적 구속력이 있으나 ICJ가 이를 강제할 수단은 없다. 이스라엘은 심리 둘째날인 17일 변론에 나선다.
1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요청한 라파 공격 중단 임시명령 심리를 위해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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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라파 공격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하원은 이스라엘 대한 무기 지원을 강제하는 이른바 ‘이스라엘 안보지원 법안’을 이날 공화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미 하원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이스라엘에 보내기로 했던 폭탄 수송을 잠정 중단한 것을 비판하며 당론에 따라 찬성 224표, 반대 177표로 법안을 의결했다. 민주당에선 16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 내 이탈표는 3표에 그쳤다.
법안에는 이스라엘로 폭탄 선적이 이뤄질 때까지 국무부와 국방부, 국가안보회의(NSC)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법안 통과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로, 실제 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해당 법안이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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