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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발표에 관심이 몰린 것은 한국은행이 하반기 금리 인하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던 지표 전망을 국내 주요 기관 중 가장 먼저 내놨기 때문이다. 국책연구원인 KDI는 기획재정부나 한은보다 한 발 빨리 전망을 내놔 향후 정책당국의 움직임을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로 통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물가가 하반기 월평균 2.3%까지 내려가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날 KDI가 내놓은 하반기 물가 전망은 2.3%로, 한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는 범위에 들 것으로 관측됐다. 실제로 KDI는 '2024년 상반기 경제 전망'을 통해 소비자물가가 올해 2.6%를 찍고, 내년 2.1%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특히 올해 물가가 상반기 3.0%에서 하반기 2.3%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내년에는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0%)에 다가설 것으로 봤다.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올해 2.3%, 내년 2.0%까지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유가 전망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올해 배럴당 83달러 선의 유가를 상정해 상반기 물가가 2.9%를 찍고, 하반기 2.3%를 기록해 점차 안정 목표에 다가설 것으로 보고 지난 2월 경제 전망을 내놨다. KDI는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간 갈등으로 국제유가 상승이 컸던 상황을 반영해 연간 유가 85달러를 전제로 경제 전망을 짰는데도 하반기 물가 전망은 한은과 동일하다. 그만큼 유가 상승에 대한 물가 감내력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KDI는 "하반기 물가는 목표에 근접한 수준까지 가며 더 안정될 전망"이라며 "현재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를 중립 수준으로 서서히 완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유가와 환율, 농산물 가격 때문에 소비자물가가 등락하고 있지만 근원물가는 안정적인 추세로 가고 있다"며 "금리 인하 시점이 너무 뒤로 밀리면 경기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반기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16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앞에 이자율이 표시돼 있다. 김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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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금리 충격이 깊어지면서 내수와 투자 위축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 효과가 소비·투자에 전달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한은이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소비와 건설경기를 중심으로 내수 침체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이날 KDI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2.2%에서 2.6%로 높여 잡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GDP 증가율은 상반기에 2.9%, 하반기에는 2.3%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질 못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KDI뿐만 아니라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최근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개선되는 모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GDP 성장률을 2.2%에서 2.6%로 올렸고,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2.0%→2.5%), 글로벌 투자은행(8곳 평균치·2.1%→2.5%)도 잇달아 성장률을 높여 잡았다. 한은도 오는 23일 수정 경제 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성장 눈높이를 2.1%에서 2%대 중반으로 끌어올릴 것이 유력하다.
이처럼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는데 내수까지 살아나려면 선제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최근 수출이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이 지체되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고금리 장기화를 지목했다. KDI에 따르면 현재 금리가 지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올해 소비는 0.4%포인트, 설비투자는 1.4%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고금리 충격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직접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 314만명의 대출 잔액은 1043조원인데,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들의 이자 부담이 7조20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1인당 평균 이자 부담이 230만원 뛰어오르는 것이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한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하면서 서민층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초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작정 미국이 금리를 인하할 때까지 기다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지연 KDI 동향총괄은 "미국 등 특정 국가의 정책 기조에 동조하기보다는 우리 거시 경제 상황을 감안해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미국과 경기 상황이 다른데 우리가 통화정책을 미국과 같이한다면 한국의 경기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물가도 불안해질 수 있다"며 "순대외자산이 50%가량 있고, 외환보유액도 많이 축적돼 있어 단순히 금리 격차만으로 자본 유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다만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가 내려가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지난해부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많이 퍼졌는데 이는 금융 안정성 측면에서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1990년대 미국처럼 완화적 통화정책과 긴축적 재정정책을 결합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긴축 재정정책에 나선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저금리정책을 통해 경기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사례가 있다.
[김정환 기자 / 이희조 기자 / 한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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