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AI에 대규모 투자 계획…日 정부에 보조 맞춘 듯
전문가 "소프트뱅크, 네이버와 관계 정리하는 모양새"
네이버가 키운 메신저 라인, 일본에 넘어가나(CG) |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 재검토 등 행정지도로 네이버를 압박하며 이른바 '라인 사태'를 일으킨 배경에는 자국의 인공지능(AI)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려는 야심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 명분으로 정보보안 사건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소프트뱅크를 통한 자국 IT(정보기술) 산업 육성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것이다.
◇ 日, 겉으론 "보안 강화"…배경은 AI 패권국 도약 전략 관측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자 일본 총무성은 올해 3월과 4월 두 차례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15일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의 재검토 등 행정지도를 내린 것과 관련해 "'위탁처 관리'가 적절하게 기능하는 형태가 되는 게 중요하다"며 네이버를 겨냥했다.
일본 정부가 정보보안 문제로 외국 민간기업에 지분 매각을 사실상 압박하는 상황으로, 네이버 최수연 대표는 "자본 지배력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행정지도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일본 최대 포털 야후와 네이버가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키운 라인 간 경영통합이 이뤄진 2021년부터 사실상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주도해왔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 대주주인 A홀딩스 주식을 50%씩 보유하고 있지만 이사 추천권은 소프트뱅크 3명, 네이버 2명으로 할당돼 경영권이 소프트뱅크 컨트롤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소프트뱅크가 사실상 경영권을 쥐고 있음에도 일본이 네이버 지분 축소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은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지우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프트뱅크 미야카와 준이치(宮川 潤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일 결산설명회에서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추가 매입할 경우 장점에 대해 "100%를 사면 여러가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만 51%대 49 정도라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분을 충분히 매입하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특히 일본은 자국이 AI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데 네이버를 걸림돌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IT 공정과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 위정현 준비위원장(중앙대 다빈치가상대학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라인사태의 이면에는 일본의 AI 정책이 있다고 본다"며 "소프트뱅크가 AI 사업에서 네이버와 관계를 정리하는 모양새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현재 A홀딩스에 대한 지분 구조에서 소프트뱅크가 사업을 하는데 네이버가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소프트뱅크가 다수 지분을 확보해 라인야후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 소프트뱅크, AI에 88조원 투자 전망…네이버와 경쟁자될 수도
일본의 이런 행보는 소프트뱅크가 AI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는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2일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AI 혁명에 대응할 사업 준비를 구상 중이며 최대 10조엔(약 88조원) 투자가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손 회장의 핵심 구상 중 하나는 AI 전용 반도체 개발이며 미국 엔비디아처럼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형식으로 2025년 봄 시제품을 제작해 같은 해 가을 양산 체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는 90%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암)에 새 조직을 만드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
일본의 IT 산업이 선진국들에 비해 뒤처진 상황에서 손 회장은 AI 사업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 왔다.
손 회장은 작년 10월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범용인공지능(AGI)이 10년 내 실현될 것이라며 "소프트뱅크그룹을 세계에서 가장 AI를 (많이) 활용하는 그룹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6월에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손 회장과 사업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를 만들면서 AI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했지만 양측이 '결별' 수순을 밟으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자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AI 정책과 라인야후를 자국 인터넷 인프라의 핵심으로 키우려는 구상에 따라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나섰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소프트뱅크의 움직임이 AI 등 IT 산업을 육성하려는 일본 정부와 교감 아래 이뤄졌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달 10일 소프트뱅크가 AI 개발을 위한 슈퍼컴퓨터를 정비하는 데 최대 421억엔(약 3천7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라인은 일본 내 월간 이용자 수가 9천600만명에 달하며 일부에서는 행정 서비스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에 라인야후의 네이버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적지 않다.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경제안전보장추진본부장은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두 번째 행정지도를 한 직후 "플랫폼 사업자는 사기업인 동시에 공공재"라며 "근본적 대책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의 한 IT 전문가는 "일본에는 지금 사실상 전자정부가 없고 라인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일본이 라인야후를 자국 회사로 완전히 만든 뒤 각종 증명서 발급 등 공공 서비스 통합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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